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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평점 :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도시 캉탕에서는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의 신을 달래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 사람을 빠뜨리는 제사 풍습이 남아 있었다. 배의 돛대 꼭대기 끝에서 희생자는 눈을 가린 채 뛰어내렸다. 이 사람들은 '뽑힌 자'라는 뜻에서 '파다'라고 불린다. 이 의식은 폐지되었고 현재는 누구나 방파제에 만들어진 돛대 모양의 높은 탑 위에 올라가 바다로 뛰어내릴 수 있다. 인습은 놀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해서 그 위에 올라가지만, 뽑힌 자로 거기서 떨어진다.

한중수는 정신과 의사이자 친구인 J의 조언ㅡ보려고 걷지 말 것. 쓸 것이 없으면 쓰지 말 것. 그저 걸을 것. 걷는다는 의식도 하지 말고 걸을 것ㅡ을 받아들며 서둘러 집을 나선다. J가 한중수의 손에 쥐어준 쪽지에는 '모비 딕'에 홀려 고래잡이 배를 탔다가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세상 끝 작은 항구 마을 캉탕에서 정착한 그의 외삼촌 핍의 주소가 적혀 있다.
한중수가 J를 통해 상상한 핍은 활달하고 자유롭고 밝고 천진한 노인이었으나 그의 앞에 있는 핍은 음침하고 침울한,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 흡사 겨울잠을 자는 짐승처럼 보였다. 조카 J를 언급해도 시큰둥해하며 원한다면 남는 방에서 묵든 말든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는 핍은 아픈 나야를 돌보기 위해 병원에 간다.
한중수는 핍이 한때 운영했던 피쿼드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 선교사였던 그는 자신과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아주 먼 과거에서 부터 날아온 해임 통지서로 인해 선교사에서 해임되었고, 그때문에 글을 쓰고 있으나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느날 피쿼드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쇼크를 일으켜 캉탕병원에 실려온 한중수. 그를 병원에 데려간 이는 해임된 선교사 타나엘이다.
컨설팅 강사인 한중수는 머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맹렬히 울려 더이상 강의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스트레스와 과로가 원인이라고 했지만 물리적인 치료와 투약을 해야하는 병은 아니었다. 스물한 살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과 우울증 환자 어머니였다. 그는 미친 것처럼 필사적이고 전투적으로 살면서 한순간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죽기 직전에, 캉탕으로 온 것이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핍을 발견한 한중수는 그를 뒤따라가 아픈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에 가슴에 무언가 꽉 차는 느낌을 받는다. 글이 써지지 않는 타나엘은 한중수를 대상으로 말을 하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타나엘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선교사가 된, 그리고 선교사에서 해임된 까닭을 이야기한다.
어느날 나야의 생일 파티를 위해 장을 보고 집을 정리하고 한중수를 초대하는 핍은 밝고 들떴다. 다음날 한중수의 기대와는 달리 집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지나치게 고요하고, 다시 하루가 지나 한중수는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진 해안에 앉아 있는 핍을 본다. 그는 캉탕 축제의 마지막날, 나야는 3년 전에 죽어 해안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묻혀있음을 알게 된다.
축제의 마지막, 파다가 물에 뛰어든다. 바다에 뛰어든 파다는 모두 서른세 명, 그들 가운데 타나엘이 포함 되었다. 그러나 타나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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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등장인물들이 안주하지 못하고 떠다닌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과거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만의 방식으로 몸무림치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학교에 다닐 수 없을만큼 가난해 열여섯 살에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가 열아홉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을 나온 핍. 그에게 삶의 의욕을 키워준 유일한 행위는 독서였고 '모비 딕'에 홀려 바다로 나가 세이렌(나야)의 노래소리에 끌려 캉탕에 몸을 던진 최기남 핍. J가 기억하는 (생서조림을 하고 보쌈을 만들어 내며 활달한) 핍은 나야가 죽으면서 사라졌다. 파다가 되어 캉탕에 몸을 던져 구원되었지만, 나야의 죽음으로 육신만 살아남은 최기남은, '모비 딕'에서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된 후 정신이 온전하지 않게 된 핍과 같은 선상에 있다.
190.
"나는 죽은 사람이야. 죽은 사람은 움직일 수 없지. 나는 여기서만 산 사람이야. 여기는 죽은 내가 사는 곳이야."
젊은 시절 고향에서 한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온 후 오랜 세월이 지나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력한 살해 용의자가 되어 선교사에서 해임된 타나엘은 캉탕에서 소명서를 쓰는 중이다. 그러나 비록 그녀를 직접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가했던 잘못이 떠오르면서 글을 쓰지 못한다. 대신 그가 찾은 방식은 한중수에게 말로써 글을 쓰는 것인데, 기록으로 남는 글이 아닌 언어는 휘발된다는 사실에 선택했지만 이는 타나엘에게 고해성사처럼 되어버리고 오히려 자신의 '죄'에 대면하게 된다. 이는 희생자로 뽑힌 파다가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구원자가 되는 것처럼 타나엘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파다가 된다.
타나엘의 고백을 들으면서 내면 가장 아래에 깔려있던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마주하는 한중수. 노름꾼 아버지를 인간 이하로 여겼던 것, 칼에 찔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방치한 것, 그 누구에게도ㅡJ에게도ㅡ말하지 않았던, 그래서 자신을 노려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껴왔던 것을 직시한다. 그 또한 파다가 되어 캉탕으로 흘러든 것이다.
65.
캉탕은 익숙한 언어로부터 자기를 숨기기 위해 핍이 택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그 질문은 곧바로 그 자신을 겨냥하고 날아왔다. 핍이 자기를 마뜩잖아 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죄'와 '구원'의 근원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구원받고자 한다. 철학이, 문학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이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고 완벽한 해법이 없기 때문일테다. 이러한 반복된 과정을 통해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214.
바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고백들이 저 견고한 침묵 속에 묻혀 있는 것일까. 바다가 저렇게 검푸르고 탕탕하고 깊고 아득한 것은 그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