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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박한 공기 속으로
존 크라카우어 지음, 김훈 옮김 / 민음인 / 2025년 2월
평점 :
이 책은 저자 존 크라카우어가 직접 경험하고 쓴 논픽션이다. 저자는 산악잡지 『아웃사이드』의 기자로서 1996년 5월에 있을 에베레스트 등반을 취재하기 위해 로브 홀이 이끄는 등반팀에 합류한다. 젊은 시절 산악인이었던 그는 언론인의 입장이 아닌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산악인으로서의 자세로 설레는 마음을 담아 에베레스트에 발을 내딛지만, 예상치 못했던 폭설로 인해 그날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사람들 중 열두 명이 사망한다. 사고가 있던 당일, 거의 같은 시간 대에 전부 서른세 명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했다.
열두 명의 죽음 뒤에는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다. 가장 큰 원인이야 당연히 기상 악화다. 그러나 등반대들 간의 약속된 규칙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안전을 위해 암묵적으로 지켜져왔던 원칙 등을 어기는 이들, 그리고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아주 사소한 실수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 등이 얽히고설켜 큰 피해를 불러왔다.

이 책은 1996년 5월 10일부터 11일 사이에 일어났던 참극의 현장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1990년대 전반에 이르는 에베레스트 등반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에베레스트 등반이 상업화가 된 배경과 그로인해 달라진 여러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복간되면서 추가된 후기에서는 사고의 전말에 대한 책임 소재와 쟁점, 그에 따른 논쟁된 부분들이 쓰여 있다.
1996년 5월에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3월부터 준비에 들어간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의 생활인들이다. 의사, 우체국 직원, 목수, 기업체 간부, 출판업자, 교사 등 평범한 사람들. 그들은 육체적 한계에 직면하고 스스로를 던져야만한다. 8천미터가 넘는 산봉우리에 닿기 위해 혹독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그곳으로 향하게 만드는 매력은 무엇일까.
「이 세상에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것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체로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들의 야망과 환상은 좀 더 신중한 사람들이 가짐직한 회의를 쓸어내 버릴 만큼 강력하다. 결단력과 믿음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 세상에서 그런 사람들은 잘하면 괴짜 정도로 취급받으나 잘못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 에베레스트는 그런 사람들의 일부를 유혹했다. 그들의 등반 경력은 전혀 없는 경우에서 약간 있는 정도까지의 편차를 보였다. 그중에서 에베레스트 등반을 할 만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모두가 공통으로 가진 게 세 가지가 있었으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 위대한 결단력, 인내심이 바로 그것이었다. (월트 언스워스, 『에베레스트』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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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부터 본격적인 본문이 시작되고 11장부터 절정으로 향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고 경위는 물론이고 8천 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경험하는 자연의 순수와 아름다움에 더해진 경외심, 그리고 그 안에서 찾아오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의도치 않은 고독은, 읽는 독자까지도 새삼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에베레스트에서의 딜레마는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부쳐야하는 적절한 선이 어디냐는 것이다. 특히 8천미터를 훌쩍 넘어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 이 딜레마는 더욱 극심해진다. 고통을 극복하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고, 지나치게 밀어부치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인간은 종종 성공이라는 욕망에 무릎을 꿇는다.
그야말로 순간의 선택으로 생사가 갈라진 사람들.
이안 우달 팀이 출발 일정 약속을 지켰다면, 예정대로 선발대가 고정 밧줄을 설치했다면, 벡이 존 크라카우어를 따라 사우스 콜로 내려왔다면, 두 시간 가까이 지연된 등반 일정에서 예정된 하산 시간을 지켜더라면, 저산소증에 걸린 해리스가 잘못된 정보만 전달하지 않았다면, 이안 우달이 무전기를 빌려주었다면, 일본인 팀이 정상 정복에 눈이 어두워 조난자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이 외에도 저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무의식 중에 행한 행위들만 없었다면 사망자 중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었을까. 이러한 후회와 자조는 아마 그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자책이 됐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에베레스트 등정이 동경인 사람도 있고, 부를 과시하기 위한 사람도 있다. 에베레스트가 곧 생계인 사람도 있으며, 출세의 수단인 사람도 있다. 무엇이 됐든 로브 홀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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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륙 최고봉이라고 하는 모든 대륙의 최고봉 중 하나인 에베레스트의 해발 고도는 8,840미터다. 우리나라 한라산과 지리산이 2천 미터를 넘지 않는다. 약 4배에 가까운 높이다. 8천미터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높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 등반을 꿈꾼다(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한라산에 만족한다). "Because it is there." 라고 말한 조지 리-맬러리의 대답이 멋지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숨쉬고 살아 있다는 확인, 장구한 역사 안에서 나는 미미한 존재라는 데에서 오는 겸허함. 이것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아닐까싶다.
※ 도서지원
전문전인 등반 기술은 에베레스트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으며, 내가 고산 지대에서 보낸 시간은 우리 등반대에 소속된 대부분의 다른 고객보다도 훨씬 더 적었다. 사실상 에베레스트의 발치에 불과한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이미 이제까지 등반한 그 어느 산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운 셈이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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