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소년이 온다 + 작별하지 않는다 + 채식주의자(리마스터판) - 전3권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알라딘 이벤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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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를 보면 소설의 화자인 경하는 작가 자신을 데려온 것으로 보인다. 경하는 이미 5.18광주민주항쟁을 소재로 하는 작품('소년이 온다')을 쓴 뒤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고, <작별>이란 제목의 소설을 썼었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한강의 작품 중에 <작별>이라는 단편소설이 있고, 작중에 묘사한 내용과도 일치한다. 소설의 1부가 비유적 서술을 통해 제주 4.3사건에 접근한다면, 2부는 당시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그려낸다.


1부에서는 많은 부분이 상당히 의미있게 다가온다.

인선이 만들었던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잘려나가 봉합한 손가락을 포기하고 싶어했으나 설령 포기한다고 해도 환지통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인선, 인선이 경하에게 자주 했던 말,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 테니까" 등 예사롭게 넘어가지 많은 대사와 설정들이 책장을 넘길때마다 등장한다.


소설 중반부를 훌쩍 넘어 인선의 입을 통해 어머니의 기억과 증언을 소환해 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개인적으로 확 와닿았던 부분은 경하가 인적이 드문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폭설과 어둠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돌아가야 할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갈등하는 경하의 모습은 단지 잃어버린 길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하 본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제주4.3 사건의 자료와 증거를 찾아다니며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야 했던 인선의 어머니로 대변하는 피해자 유가족의 삶이 아니었을까.


가는 길을 헤매고 있는 경하는 새는 어떻게 됐을지,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 수 있는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진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눈이 지금 서울에도 내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즉 광주 및 제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른 지역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말한다.



인선의 새 아마의 죽음은 제주민의 죽음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해명조차 듣지 못했던 인선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의 안타까움과 고통을 상징한다. 경하가 죽은 새를 묻는 과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또한 아마는 경하의 새가 아니고, 그녀는 가족은 물론 가까이 있는 이웃도 아닌 외지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하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은 새의 죽음으로 고통을 느낄 만큼 새를 사랑한 적도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부분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과연 제주 4.3사건이 시대성에 의해 어쩔 수 없는, 혹은 제주도에 한정된 사건이 아님을 대변한다.


아마를 묻고 난 후 이제 더 할일이 없다는 경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은 과거 인선과 경하가 함께 하기로 했던 두 사람의 프로젝트에 있지 않을까. 프로젝트의 이름은 '작별하지 않는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소설은 여전히 역사로부터, 가해자로부터 사죄받지 못한 이들, 혹은 죽은 자를 대신에 살아왔던 이들에 대한 진혼곡이다. (중략) 전작이 그랬듯, 가장 약한 이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인내가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공감하고 동시에 잊혀진 과거로 치부해버리지 않는 것에 대한 동의 여부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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