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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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인의 역사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인류의 가장 대중적인 어족 중 하나인 대구를 통해 중세 이전부터 이 책을 집필한 20세기 후반까지의 식민지 산업, 경제, 환경, 기후 등 다방면으로 (유럽 중심의) 인류사를 톺아본다. 책을 따라가다보면 대구의 역사뿐 아니라 15~19세기 중반의 세계사, 특히 식민지 시대 및 플랜테이션 경제 지도를 그려볼 수 있다. 


대구의 어원 및 생태적 특성과 종류 및 종류별 차이점, 서식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생태 환경, 대구 어업에 의한 어업 무역 시장의 변화와 항구 건설과 산업 전쟁, 대구 어업 산업의 발달과 덩달아 주요 산업 품목이 된 소금, 그리고 대구 어업 산업의 활성화로 인한 폐해 등을 이야기한다. 또한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대구 어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어민들의 작업 환경과 실태, 대구잡이에 사용됐던 선박과 어업의 새로운 기술 및 조선업 발달로 이어지는 현대화 과정, 장거리 이동을 위한 급속 냉동 공정의 개발과 식재료의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계들의 발명과 도입 등 산업적 측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대구 어업 산업 덕분에 달라진 여러 기조들이 각 국가 및 국가 간의 관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구 및 생선 가공식품이 개발되면서 소금뿐만 아니라 면화, 담배, 설탕 등 부수적인 물품을 들이는 선박이 생겨났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대구를 매매했던 상인들은 모두 노예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식민지에 건설된 플랜테이션 체제에 식량을 공급했을뿐만 아니라 나아가 아프리카인 노예 무역을 축진시켰다. 거기다 식민지 경쟁은 자연스레 전쟁을 불러온다. 지나친 경쟁의 부작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규모에  맞지 않은 과잉 생산이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무역 및 항해 조례에도 불구하고 과잉 생산된 대구를 처분하기 위해 뉴잉글래드인들의 대구 무역을 눈감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현대사회에서 국가 간 배타적 수역 확보 및 조업 용량을 둔 갈등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대구 어족의 감소로 조업 금지 조치 및 조업 할당량 부과가 시행됐다. 원하는대로 대구를 퍼올리던 시절은 끝난 셈이다. 이는 단순히 조업량을 줄이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어민들의 생계가 흔들렸고, 특히 냉동 장비 및 선박 개조에 따른 선투자를 그대로 빚으로 안가 가야하는 상황에 몰렸다. 어민들은 다른 어족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와 같은 조업 금지 조치는 연쇄적으로 일어날, 앞날이 훤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어민들은 대구가 돌아오기를 기대하지만, 20세기 초에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원인불명의 몇 가지 이유,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 환경의 변화까지 더해져 대구가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남획은 전 지구적 문제다. UN 식량농업기구가 추적하는 물고기 유형의 약 60퍼센트는 거의 고갈 수준에 이르렀다. 이 자료가 1990년대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더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을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명태가 사라진지 오래고, 최근에는 오징어 어획량이 현저히 줄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어민들은 새로운 어종을 찾아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하고, 새로 발견한 어족 역시 사라진 다른 물고기와 같은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저자가 대구 어족의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꼽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병적인 집단 부정이다. 사람들이 대구 어족수가 멸종에 가까워지고 있다기보다는 단지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는 대구뿐 아니라 고래를 비롯한 멸종 위기종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점일 것이다. 저자의 경고는 담담하지만 섬뜩하다.


사실 멸종 위기종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를 모르거나 혹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이유들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자료가 차고 넘친다. 이 책은 현재 직면한 해양 산업과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종들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담긴 기록이 될 수 있다. 모쪼록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도서지원
 
 




#대구 #마크쿨란스키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사람들은 자연과 진화를 인간 활동과 완전 별개인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 한다. 마치 한쪽에는 자연의 세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인간이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 만일 인간이 광포한 포식자라면 그 역시 진화의 일부분이다. 만일 대구와 해덕대구와 기타 종이 인간 때문에 전멸해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놈들보다 더 잘 적응한 뭔가가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궁극적인 실용주의자인 자연은 뭔가 성공할 만한 것을 끈덕지게 물색한다. 그리고 바퀴벌레의 경우에서 잘 드러났듯이, 자연에서 가장 성공한 놈들이라고 해서 항상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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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다 바뢰이 연대기 2
로이 야콥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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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뢰이 연대기』 두 번째 이야기. 1권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스 바뢰이를 중심으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척박한 환경에 대항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자연의 경이에 감탄하면서도 때로는 자연의 힘 앞에 무참히 꺾여 절망하지만 또다시 몸을 일으켜 조화롭게 살아가고자하는 바뢰이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권은 전쟁의 폐허와 고통 속에서 꿋꿋이 삶을 꾸려나가는 잉그리드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서사다. 








1권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지 않아도 2권을 읽는 데 별 문제는 없으나 1권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접한다면 훨씬 풍성한 감성으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잉그리드가 고되고 헛헛한 메마른 도시의 일상에 낙담해 바뢰이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걷는 섬 곳곳에는 바뢰이가 사람들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물, 정고, 창고, 부두, 부두의 밧줄, 오리털, 확장한 남쪽 방과 덧댄 지붕 등 잉그리드의 추억이 마냥 아름답게 펼쳐지지만은 않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앞서 언급한 것들이 잉그리드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고,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한 그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2권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연대다.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도시에서 배를 타고 전쟁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다. 해안가에는 격추된 배에서 흘러나온 수백 수천 구의 시신이 밀려온다. 누군가는 점령군을 도와 제 살 길을 모색하고, 누군가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애를 쓴다. 잉그리드는 피난민을 주도적으로 돕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돈과 배급표를 털어 음식을 구해 나눠 먹이고, 제 부모조차 어쩌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전쟁 고아들을 씻기고 입힌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그들의 동참을 이끌어낸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우선하고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난민 여성들이 성폭행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다고해서 잉그리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절망이라는 절벽 끝에 서서 삶을 그만두고 싶을 때 손을 내미는 이가 있다. 잉그리드가 희생에 가까운 선의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역시 절벽 앞에 서 있었던 경험이 있고 누군가의 조용한 선의가 그녀를 구원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잉그리드는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참상 속, 춥고 황폐한 시대. 잉그리드를 스쳐간 사람들에 대해 그녀가 아는 건, 그들 삶의 이력이 아닌 죽음과 이별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그리고 그들을 살게 한 것은 삶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을까.   


딸과 함께 돌아온 수잔, 잉그리드의 딸 카야의 출생, 가족들을 데리고 섬으로 귀환한 라스와 펠릭스. 그리고 바뢰이섬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쟁 난민들. 상실과 이별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며 혈연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로 공동체를 이룬 그들의 화합은 다시 피어나는 바뢰이섬의 생명력이자 종전 후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아홉 개의 똑같은 문장,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카야의 눈. 
이것이 잉그리드가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올해 읽은 작품 중 아름다운 소설로 꼽는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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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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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상당히 공감되는 제목이다.
이유야 갖다붙이기 나름이지만 사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 이유가 억지춘향이라는 것을.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싫을 때.  


균등하지 않은 사랑, 격려와 흔들림, 늘 한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밝음과 그늘, 천성적으로 대인배가 될 수 없는 소인배의 항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낙차, 사랑과 결혼, 우정, 그리고 늙어짐.  






 



책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부모를 배반하는 것애 대해(단어 선정이 오해를 부를만하지만). 부모들 역시 자신의 삶을 두고 최선의 삶이었다고 확신하기 어렵기는 자식 세대와 마찬가지다. 특히 미래에 대한 경험의 부재는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은 입장이고 심지어 위기 대처 순발력은 기성세대가 훨씬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에서 과거의 경험을 고집하는 우를 범한다.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많은 부모들이 '나'처럼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들은 모른다. 기성세대의 역할은 그들 앞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뒤를 좇으며 필요할 때 손을 뻗어 등을 받쳐주는 것일테다. 자식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신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으로 살고 있으니 부모도 그에 맞게 발맞춰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의 간섭(그것이 비록 애정에 기반한다고해도) 혹은 무관심이 부담되거나 상처가 되듯 부모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부모와 자식이야말로 가장 적정한 거리두기의 폭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럽게.  


저자는 가난한 삶을 쉬이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고 썼다. 그의 글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삶이 아름답기는 기실 어렵다. 장마철이면 불안해하는 반지하 거주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되는 청년, 보호종료가 되면 방 한 칸 얻을 수 없는 돈으로 독립해 각자 도생해야 하는 보호종료 청년들, 살인적인 더위에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독거 노인들. 그들 앞에서 가난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살아 있음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썼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 사랑받았던 기억, 그리움 들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 저자의 오뚜기 같은 생명력이 그를 더 아름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추억과 기억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도적으로 고민해야할 것들이 개인의 노력과 같이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말'이었다. 그야말로 입조심.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신의 체면도 깎지 않는 적당한 언어를 골라내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어느새 자기검열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 이러다가 결국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에 피로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대화의 폭은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지 못한다. 보통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서다. 특히 서로를 향해 느끼는 친밀도가 상이할 경우 더욱 그렇다. 하나의 대화를 두고도 한 사람은 '우리 사이라면 용인 가능하다'고 여기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정도로 친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어렵다. 이 친밀도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니 말이다.  



학업, 취업, 재테크, 노후 대비.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 틈에서 모난 돌이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일이다. 요즘에는 '보통'으로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혹은 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뒤표지에는 「어쩌면 '싫음'은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싫음과 좋음의 간극을 줄여가는 게 나은 것인지, 앞서 쓴 문장처럼 싫음이 좋음에 대한 명암을 분명하게 해주니 싫음은 그것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그것 역시 사람마다 다를 터다. 어쨌든 간에 '싫음'이 꼭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부정한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용기가 있을 때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애써 증명할 필요없이, 일상에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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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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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대실 해밋의 대표작이다. 
1930년에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소설의 배경이 1928년이니 그야말로 동시대 분위기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뮤얼 스페이드 사무실에 의뢰인으로 찾아온 스물두 살 여성 원덜리. 그녀는 동생 코린을 찾아달라고 한다. 코린은 뉴욕에서 플로이드 서스비라는 남자를 만나서 샌프란시스코로 도망쳐 왔다. 원덜리는 코린을 데리고 여행 간 부모님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오기까지는 2주, 그 안에 동생 코린을 찾아야 한다. 스페이드는 동료 마일스 아처로 하여금 플로이드 서스비를 미행하라고 지시한다. 늦은 밤, 스페이드는 경찰로부터 아처의 사망 소식을 연락 받고, 몇 시간 후 아처가 미행하던 서스비마저 호텔 앞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불똥이 뜬금없이 새뮤얼 스페이드에게 향한다. 경찰은 서스비의 살인범으로, 마일스 아처의 아내는 남편의 살인범으로, 새뮤얼 스페이드를 의심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자취를 감췄던 원덜리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고, 내막을 말하지 않는 그녀로 인해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새뮤얼 스페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과는 결이 다르다. 어딘가 낭만적이고 우수에 찬 필립 말로나 내면의 고통을 끌어안은 채 끝까지 정의와 양심을 버리지 않는 해리 홀레와는 차원이 다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돈을 밝히고, 의뢰인을 협박하고, 동료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조차도.
그는 냉혹한 이기주의자일까, 아니면 합리적인 이성주의자일까?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정직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손에 꼽을 지경이다. 정직은 고사하고 연신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연약한 약자인 척하는 브리지드 오쇼네시는 거의 사기꾼 수준이다. 책을 읽고 있으면 도대체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보니 그 거짓말의 이면에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도 예측 불가다.  


아무리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보통은 50여쪽이 넘어가면 일단 일차원적으로라도 독자가 사건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은 백 쪽이 넘어가도록 당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판을 계속 흔들어대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이 소설의 진짜 빌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이은 거짓말에 거짓말이 보태지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쓰고 혼신의 연기를 하는 그들을 통해, 작가는 진실이 오도되고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을 비틀어 꼬집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상대를 속이고 이용하는 데에 사랑의 효용성을 찾는 그들에게서 나는 서글픔을 느낀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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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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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대구. 그림책 판본으로도 있는데 현재 번역본은 절판. 좋은 책이 재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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