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우슈비츠의 자매 - 나치에 맞서 삶을 구한 두 자매의 실화
록산 판이페런 지음, 배경린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4월
평점 :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 두 자매의 실화를 쓴 이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부터 종전까지 유대인들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나치당이 유럽의 국가 함락, 정부 및 유대인 공동체 장악, 시민 사회로부터 유대인 분리 고립, 파시스트 프로파간다, 인종 학살을 하기까지의 과정 및 방식, 그리고 나치당을 향한 유대인을 포함한 민간인 저항 운동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쓰여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이 책을 '에세이'로 분류했는데 개인적으로 두 여성의 전기에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낙천적이며 예술적 재능을 타고 난 언니 린테 브릴레스레이퍼르, 현실적이고 타고난 반골 기질과 뚝심있는 강인한 성품의 동생 야니 브릴레스레이퍼르.
야니가 정부 방침을 강력하게 거부했다면, 린테는 순순히 따랐다. 린테가 매번 희망을 기대했다면 야니는 희망은 없다고 여겼다. 네덜란드의 16만 유대인 신분증에 J표식이 새겨졌을 때 야니는 이를 거부했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 린테는 정부 방침에 순응했다. 기질을 떠나서 브릴레스레이퍼르 삼남매는 저항활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하는데, 이후 이들의 삶을 따라가보면 하이네스트에서 체포되기 전까지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ㅡ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2부 하이네스트>이다. 2부에서는 전쟁 중에도 마치 별천지 같았던 하이네스트와 유대인 수용소를 대비시킨다.
아무리 외딴 지역에 요새같은 여름별장이라고 하더라도 친 나치 지역 한가운데에서 꽤 오랜 시간을 브릴레스레이퍼르 가家의 대가족뿐만 아니라 도망자들의 은신처였고, 거기다 저항운동 거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족, 친구와 동지, 도망자들과 함께 노래와 춤을 즐기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숲이 주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누렸다. 그들은 작은 이벤트를 마련했고,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가득 실은 기차를 수용소로 보내던 1943년, 하이네스트에서는 이디시 문화와 더불어 다양한 예술이 꽃피기 시작했다. 춤, 연주, 노래, 낭독회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소란스러웠음에도 나치와 독일군, 부역자 이웃들까지, 어느 누구도 이 많은 사람이 하이네스트에 오간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하이네스트의 배반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3부에서는 하이네스트에 은신해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택 수색으로 체포된 후 수용소 생활을 본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베스테르보르크 - 아우슈비츠 - 베르겐-벨젠으로 이어지는 수용소 생활에 대한 처참한 실상은 다른 문헌에서 익히 알고 있는대로 참혹하기 그지없다. 공장식 학살 시설이었던 아우슈비츠만이 지옥이었을까. 베르겐-벨젠에는 '화덕'은 없었지만, '방치'가 있었다. 온갖 역병이 돌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과, 쥐가 뒤섞여 있는 그곳은 인간 존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생매장 당하는 무덤이었다.
베르겐-벨젠에서 브릴레스레이퍼르 자매와 프랑크 자매를 비롯한 아홉 명의 여자들은 서로를 돌봤다.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위로를 하며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자매는 지옥같은 상황에서 동맹을 맺고 연대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나선다. 위에서 '천운'이라고 썼지만 그 천운은 자매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린테에게 죽음이 다가오면 야니가 그 앞을 막아섰고, 야니가 죽음의 덫에 걸려들라치면 린테가 잡아끌었다. 그들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있었고, 남편과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때문이었다. 그들, 자매를 비롯한 생존자와 저항자 들의 삶 자체가 기적이다.
ㅡ
우리가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유대인 저항운동가에 대한 부분임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유대인 표식을 거부하고, 본인조차 한 치 앞의 나락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군 점령지 한가운데를 들락거리며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다른 유대인의 은신과 탈주를 도모한 유대인들. 신념과 소신에 따라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하고 탈영해 도망자가 되어 정치범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 그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예술가와 문학가들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을 눌러내린 답답함이 있었다. 현재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그에 따른 수많은 난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발가벗겨져 가스실에 밀어넣어지고 정원에 몇 십 배에 달하는 막사에 짐승처럼 구겨져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 어린이 병원과 난민촌에 폭격을 가해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가 가스실과 다르다고할 수 있을까.
잠깐이나마 낭만적이라고 느껴졌던 '하이네스트'.
나날이 발전하는 살상무기 때문에 이제는 어디에서도 '하이네스트'는 존재할 수 없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