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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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이후 자신이 왼쪽과 오른쪽, 절반으로 나뉘었다고 말하는 화자는 사라진 자신의 오른쪽 절반을 '그'라는 3인칭으로 혹은 '너'라는 2인칭으로 지칭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쉥거'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소설은 '금고'와 '하천'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서른 살 차이나는 젊은 아내를 대상로 한 유언장과 이혼 서류가 들어있는 금고는 누구도 쉽게 열 수 없는 폐쇄된 공간이며, 하천은 수십 년의 세월을 이어온 그야말로 역사의 현장으로서 열린 공간이다. 특히 해방 무렵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빗대어 정리한 십여쪽의 내용은 더할나위 없이 깔끔하다. 



'금고'는 불의, 부정, 황금, 욕망, 부끄러움 등 치부를 숨기는 장소라면, '하천'은 공개적으로 치부가 드러나는 곳이다. 결국 '금고'와 '하천'은 보기에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두 공간은 곧  화자 '나'와 또다른 자아 '쉥거'이기도 한데, 이러한 이중성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천을 중심으로 펼쳐진 인간군상과 세상사를 마치 스냅사진처럼 찍어놓는다. 도시 난개발, 권력자의 부정부패, 본질을 상실한 일회성 제도 남발, 환경 문제, 젠트리피케이션, 외국인 이주 노동자 차별, 노인과 장애인 혐오, 근친 살해, 안전 부재 등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관통하면서 소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진을 꽂아놓은 앨범처럼 읽힌다. 우리를 늘 딜레마로 빠뜨리는 시대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소설 속 '하천(변)'은 화자의 죽어버린 한쪽과 아직은 살아있는 다른 한쪽이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의기투합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순과 양면성을 대변하고 있다. 뇌졸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둔 화자의 자아가 둘로 쪼개진 이유는 자신의 죄악을 각성함과 동시에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아와 그렇지 않은 자아의 갈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천을 중심으로 무수한 이슈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끊임없이 사고가 이어진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체자들은 계속해서 바뀌어가고, 욕망만이 소비될 뿐이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이상과 현실, 선의와 위선, 폭력과 저항, 실리와 명분, 속죄와 용서, 모순과 이중성, 빛과 어둠. 근본적인 문제는 회피한 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세태와 신뢰와 사랑은 사라지고 이기적인 욕망만 남은 모습은 화자가 금고에 부착한 기폭 장치와 같다.  


사람마다 손에 새겨진 지문이 제각각 다르듯 비슷하게 보이지만 저마다 삶의 지문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의 궤도에서 모든 사람이 생의 흔적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존재 사실마저 부정할 순 없다. 그것이 아름답든 추악하든. 읽으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독자는 소설에서 보이는 내용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화자와 쉥거에 대해,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은 숨은 얘기에 대해, 더 생각해야할 것만 같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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