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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의 박물관
성혜영 지음, 한영희 사진 / 샘터사 / 2009년 12월
평점 :
내가 자라던 동네에 멋진 박물관이 있었다.
외관이 멋지고 조경이 아름답게 되어있었지만 관람하러 가본 것은 학교에서 갔던 단체관람 정도였고, 결혼하고나서는 아이의 방학 숙제를 위해서 간 정도뿐.
어딜 가든 박물관에는 오래된 기와조각, 깨진 자기, 다 녹슬고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낡은 칼, 의복, 석탑 정도의 일색으로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바퀴 쓰윽 돌아보곤 뭐라고 적어야할지 늘~ 난감했던 그 곳.
화려하고 신나는 놀거리를 찾는 아이들에겐 너무도 조용하다못해 엄숙해지는 곳.
대신 조용하고 볕도 잘 들어 아이들과 함께 바람도 쏘일겸 해서 산책하러 혹은 사진 찍으로는 더 자주 갔었던 것 같다.
헌데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나 많고 다양한 박물관이 존재하고 있음이 놀라웠다.
등잔, 조각보, 축음기, 놋제기, 카메라, 김치. 술, 쇳대(뭔지 아시나요?) ...........
세월이 흘러 이제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된 것인지,
새삼스럽게 우리것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인지
전통 문화와 건축물, 옛것에 대한 관심과 애뜻함이 가득해진 요즘,
나에게 딱~ 맞게 찾아와준 책이 고맙기만 하다.
사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정말 차이가 많이 나나보다.
지루하고 별볼일없어 보이던 전시물에서 이야기를 찾아낸 사람들,
그 갖가지 사물들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찾고 모은 사람들,
우리 부모님들의 눈물겹고 고달팠던 삶의 애환이 담겨있는 그 곳.
박물관을 찾아 이렇게 즐거운 눈으로, 신나는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니.....
박물관을 나서며 다시 물어본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등잔이 등잔이게 하는 것은 불빛이며, 불빛은 곧 심지를 태워야 얻을 수 있는 것.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란 어쩌면 그 심지를 바로 세우고
제 그릇만큼의 기름을 넣어 주는 일이 아닐까.
그리하여 제 나름의 불꽃으로 타올라 깜빡이며 출렁거리는 것을
아슬아슬하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듯싶다. (22)
과연 나는 어떤 자화상을 그리고 있을까?.......................
젊어보인다는 말에 물색없이 희희낙락하다가도 혹 나잇값을 못한다는
뜻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한다.
관계속에 부대끼며 살아가는것이 인생이고 보면 우리는 자신의 얼굴뿐 아니라
상대의 얼굴에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196)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다양한 표정, 천의 얼굴들을 보여주는 박물관,
들어가면 향긋한 커피향이 가득할 것만 같은 커피 박물관,
지금은 거의 찾는 이가 없지만 꼬박 밤을 새워 적었던 애틋한 사연들을 전해주던 우체통,
바닷가에 외로이 서서 밤길을 알려주는 (얼마전 1박 2일에도 나왔던) 등대박물관,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놓인 수에 담겨있느 여인들의 웃음과 한숨이 들어있을 자수박물관
셀수도 없이 다양한 박물관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틀에 박힌 지루한 관람법은 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전시물들을 둘러보면서 거기에 담겼을 사연, 우리 마음에 전해지는 그리움, 아득한 추억을 보고 듣고 즐기자.
이렇게 책을 읽다보니 한자리에 우뚝 선 채로 오랜 세월, 많은 우여곡절을 지닌 건물, 나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