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이란 - 무기 수출과 석유에 대한 진실
존 W. 가버 지음, 박민희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이란의 핵무장을 둘러싸고 큰 형님 미국이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하자, EU는 즉각 알아모시겠습니다를 외쳤지만 중국은 사실상 거부했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핵무장국의 등장이 달가울리 없을 터인데 중국은 어째서 이렇게 이란을 감싸고 도는가. 조지아 공과대학 국제관계학과 '존 W. 가버'교수가 쓴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지역의 맹주였던 중국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동네에서 대장 행세를 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왔다. 중화사상을 기치로 내걸고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이에 조선을 비롯한 빵셔틀들은 알아서 기었다. 그러던 어느날 코가 크고 눈이 파란 전국구 큰 형님들이 이 동네로 몰려들어와 이권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멋도 모르고 맞붙어 따지던 중국은 그대로 한방 얻어맞고 그로기 상태가 된다. 이후 간신히 몸을 추스르긴 했지만, 자존심은 무너질 대로 무너졌고 형님들 눈치 보느라 이제는 동네에서도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없다. 중국은 와신상담하면서 이를 악물고 힘을 불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 편으로 이용할 놈이 없을까? 가만보니 이웃 동네에 자신과 비슷한 신세의 이란이라는 놈이 하나 있다. 석유가 펑펑 나오는데다가 지리적으로도 형님들로부터 중국의 방파제 역할을 해줄수 있는 요충지다. 게다가 큰형님에 대한 증오심은 중국 저리가라, 성전도 불사할 것 같은 기세니 이보다 적당한 파트너가 없다. 중국은 동병상련의 역사를 내세워 교감을 나누고 뒷구멍으로 이란과 파키스탄에 무기를 공급하고 테러를 지원하며 형님들을 견제한다.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지역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이란을 변호하고, 힘이 생겨도 자신은 헤게모니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둥 기회만 생기면 입바른 말을 해오지만, 그 속을 누가 알랴. 큰 형님이 이웃동네에 집중하게 만들고 간섭이 뜸해지기를 기다려 동네를 휘젓고 다니려는 심산은 아닌가.

 

지난 10여 년 동안 미국의 대이란 정책에 대해 중국은 얼핏 고분고분 협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1997년에는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이란과의 핵개발 협력을 파기했다. 그러나 알고보면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 산업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한 나라이자, 두 번째로 이란에 많은 무기를 수출한 나라다. 그동안 중국은 이란의 믿을만한 친구이고 미국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교묘하게 획책해왔다. 이란 핵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걸핏하면 '이란 대 미국'의 구도로 몰고갔다. 실상 미국과 이란에 양다리를 걸치고 버텨온 것이다. 가버 교수는 이러한 중국의 '대이란 정책'은 철저한 기회주의와 장기적 전략비전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전략적 기회주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란이 핵 능력을 제거당하고 온순한 국가가 되는 것을 중국이 바랄리가 없다. 미국의 시선이 분산되고 동아시아에서 그 영향력이 약화될수록 반대급부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진다. 이미 이 지역의 헤게모니가 중국으로 크게 옮겨 오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큰형님 바짓가랑이나 붙잡고 있다가 우리는 어느 순간 끈 떨어진 연같은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미국과는 달리, 신장 지역과 같은 내부의 잠재적 위협 요소를 가진 중국이 아직은 그 힘을 밖으로 돌릴 여력이 없다는 분석도 있는 듯 하지만, '원 차이나'가 실현되지 않는 이상 중국이 쉽게 밖으로 눈을 돌릴 수 없다는 발상은 너무 안이하게 들린다.

 

위완화가 기축통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당연하게 들릴만큼 경제적으로 중국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더이상 경제적 시각으로만 중국을 바라보아서는 곤란할 듯 싶다. 진짜 중국의 속내와 앞으로의 행보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은, 강자들 틈바구니에서 데탕트 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결국 가장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이들의 외교전략이 아닐까. 중국이 이란과 교류해 온 전 과정이 여기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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