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을유세계문학전집 48
조지 오웰 지음, 권진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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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1948년에 발표한 작품. 미래(당시로서는)의 파멸적인 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저자인 오웰이 제국주의를 혐오하고 있었다고도 하고, 또 스탈린의 철의장막 하의 독재국가의 공포를 그리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이 당시의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여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모습과도 적지않게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공포가 더욱 리얼해진다.

이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기도 없다. 전세계가 3개의 큰 나라로 나뉘어진 1984년, 3국간에는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인공 윈스턴이 사는 오세아니아에서는, 곳곳에 설치된 텔레스크린을 사용해서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고 있고, 언어는 신어(신언어)로 제한되며, 아이가 부모를 밀고하는 행위가 장려되고 있다. 과거를 왜곡하고, 저항 세력이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자는 반복된 고문으로 세뇌되어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윈스턴은 이 사회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어떻게든 올바른 세계관을 되찾을 수는 없을까 은밀하게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 정도의 이야기라면 그리 특별하다 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1948년에 쓰여진 이 소설에서 어느 체제의 '지배'의 형태를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놀랍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빅 브라더'의 예언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과거의 기록을 고치는 일. 항상 감시당해 행동은 제한되고 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사용하는 언어와 성생활도 통제되고, 먹는 즐거움도 빼앗겨 버렸다.
그저 '세뇌에 의해 국민을 지배하는 체제' 정도를 그리는 차원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사상범들은 철저한 폭력에 의해 개심되고, 진심으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사살된다.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감사하면서 죽어 간다. 뒤틀린 광기와 궁극의 폭력애가 섬뜩하다.

1984년을 읽은 뒤에는 폭력에 의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소설의 굉장한 점은, 이 모든 묘사와 과정에 대해 납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두에서부터 보여지는 당의 캐치프레이즈를 마지막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게 되는 것일 뿐, 도취되거나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한층 더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특히 종반의 오브라이언이라는 당원이 펼치는 사상이론은 실로 논리적이다. 이 정도까지 철두철미하게 구축된 사상에는 역으로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든다. 

윈스턴의 고독한 싸움은 그 자체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인간의 존엄을 찾기 위한 싸움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자를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결코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읽기를 멈출수 없는 것은 나 자신이 윈스턴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입장을 바꿔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1984에 그려진 세계가 소설 속만의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만큼 낙관적으로 되지만은 않는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러시아, 북한, 심지어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에 이르기까지, 어딘가 비슷한 풍경이 있지 않았나하고 읽으면서 순간순간 움찔 하곤 했다.

인간이란 정말로 약한 존재다. 육체에 고통이 가해지면 이제 사상따위는 어찌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정신은 타협을 원한다. 그렇지만 드물게는 숭고한 사명을 위해서 이를 견뎌내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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