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라오가 좋아
구경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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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나 저놈이나 덜떨어진 인간들의 대행진이다. 철새처럼 이 남자 저남자 떠돌아다니는 여자도 싫고, 마누라 도망가게 만든 패배자도 짜증난다. 남편 겉돌게 만드는 마누라도 싫고, 처남댁에게 홀려서 처자식 다 내팽개치고 대책없이 도망다니는 남자도 팔푼이 같아서 싫다. 그냥 시베리아 벌판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라오라오나 병째로 들고 까라. 처제만 조금 좋다.

라오스에서는 큰 건설현장의 책임자였고 우러러보이던 그런 남자가 소개시켜 준 사람이라면 서울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사업실패하고 안산에 틀어박혀 지내는 남자에게 매까지 맞는신세. 어지간히 싫기도 싫었겠지. 어쩌면 도망갈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정말로 맞을짓만 골라했을 지도 모른다. 안봤으니 누가알어. 안그래도 하루하루 술로 보내는 패배자로서는 또 그것을 참아줄 아량도 자제심도 바닥난 상태, 때려도 그냥 때리는 게 아니고 뺨때리는 정도로는 모자라서 틀림없이 책모서리나 벨트 버클 같은 걸로 작정하고 팼을 것 같다.

라오스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처녀를 한국으로 데려온 책임감 때문에 챙겨준 거라 하지만 그 실수가 과연 진짜 실수일까? 그건 모르겠다. 불륜을 저지르고 난 뒤에는 눈에 뵈는 게 없다. 아마 그게 남자의 본심이였겠지. 데리고 튄다. 그러면 여자는 순순히 따라온다. 이미 여자의 마음은 이남자로 갈아 탄 뒤였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모든게 일그러진다. 전재산을 아내에게 넘기고 자기는 사랑하는 여자만 있으면 된다? 근데 여자 입장에서는 돈을 보고 따라가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돈도 한푼없이 중고차에서 먹고 자고, 라오스에서 온 여자 아니라 중고차집 막내 딸이라도 이런 생활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매형과 눈맞아 도망간 여자를 탐정 풀어서 찾아와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놈이나, 그렇게 끌려간 여자를 또 악착같이 되찾아 오려는 놈이나... 아무튼 이런 암울한 시추에이션을 너무 심각하지 않게 때로는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능청스럽게 그려낸다.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게 살짝쿵 블랙코미디같은 맛도 난다. 실제로는 코미디 소설은 아니지만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왠지 정말로 한편의 코미디영화가 될 것 같은 이야기다.

얻어먹는 커피 한잔에 프림을 잔뜩 타서 죽처럼 만들어 배를 채우며 사는 것보다는, 그래 가라. 라오스에 가서 어부가 되는 게 지금의 남자에게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 좋아하는 라오라오도 실컷 마실 수 있고. 뭐 다들 어떻게 되도 상관 없지만, 아무쪼록 처제만은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뜬금 없지만 이렇게 야무진 아가씨에게도 형부 손 붙잡고 만화방 다니던 소녀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근거린다. 장르에 상관없이 처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라오라오 외전 같은것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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