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양장본)
데이비드 덴비 지음, 김번.문병훈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예전에 고전과 관련된 강의를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문학이라던가 고전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무언가 제대로 배워주겠다는 의욕에 넘치고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지나고 보니 그저 학점을 위한 수강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되고 말았다. 부끄럽지만 당연히 해당 강의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에 남는 부분도 없고 지금은 거의 인상에도 남아있지 않다. 단지 강의에서 받은 학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려고 보니 서점에는 관련서적이 무궁무진하다. 공부를 하기에도 충분하고 교양을 쌓으려는 목적을 충족시키기에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렇지만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던 그 시절의, 교수님과 동료들과 함께했던 생생한 강의실의 모습은 그 많은 책들중 어디에도 없다.

고전에 대해 좀더 깊이 이해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을 즐겁게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 의외로 그리운 시간으로 나를 인도해주었다. 다시한번 살아있는 배움의 현장에 동참할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본서는 단순한 고전의 이해나, 문학개론이 아니다. 마흔 여덟살의 뉴욕지 영화평론가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이기도 한 저자 데이비드 덴버가 1991년 가을, 모교인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한지 30년만에 학교로 돌아와 열여덟살짜리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그들과 똑같은 책을 읽는다. 호머, 플라톤, 소포클레스, 어거스틴, 칸트, 헤겔, 막스,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다. 여기에는 교수님의 강의가 있고, 학생들과의 토론이 있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고찰한다. 비록 나의 발언권이 없다는 사실은 아쉽지만 생생한 강의의 현장에 동참할 기회를 얻을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본 강의에 청강생으로 참여하기 전까지 저자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왠지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고 스산했다고 밝히고 있다. 왜 그런지는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 저자도 알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지식이었던가.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집어들기 전까지 느끼고 있던 감정도 저자와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본서는 저자의 두번째로 맞이한 대학생활 1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청강생으로 참여하여 보고 듣는 것들을 경험한대로 써내려간다. 따라서 이책은 잔잔한 여행의 기록이자 저자가 중년의 나이에 기갈들린듯이 닥치는 대로 삼켰던 위대한 이야기들과 주용한 사상들에 대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책은 모험기인 셈이며 천진난만한 책이며 아마추어의 눈으로 바라본 책이기도 하다. 이책을 펼쳐드는 평범한 독자들의 눈높이가 바로 이렇지 않을까.

영화가 쇠퇴하고 대중문화가 체제순응과 자기만족의 영역이 되어버린 반면에 전통적 고급문화는 바로 그 생소함과 어려움탓에 학생들에게 이상야릇하게 보인다. 심지어 지금에 와서 그것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예전에 다른 서적에서 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읽을만한 책이라고 여겨져셔 읽혀온 책들이라고 정의를 내린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고전이 한없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지금에 와서 그것만으로는 결코 고전을 말할수 없을 듯 하다. 거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은 어렵다. 그리고 고전이 지금의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고 정말로 낯설지만 그것이 바로 고전의 가치와 의의라는 것. 다르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 낯설음, 생소함을 회피하는 것은 위대한 고전들과의 만남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면에서는 고전읽기는 인간관계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보인다. 타인의 가치를 읽어내고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것처럼, 이런 생소함과 난해함을 똑바로 마주했을 때에야말로 비로소 위대한 고전들이 품고있는 참가치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볼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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