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돌베개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인류의 삶은 보다 편한쪽으로 진화되어 가고 있다. 달나라에 가는 세상이니 어쩌니 하는 케케묵은 비유가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 손에 닿는것 하나하나가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은 것이 없고, 이만하면 모든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 신제품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발전속도가 빨라진만큼 사람들의 적응력도 덩달아 높아져서 이제는 정말로 획기적인 물건을 접해도 별 감흥이 없거나, 놀라움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리모컨이 망가지면 티비도 보기 귀찮고 비행기 탄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없어진지 오래이다. 휴대폰이 보편화 된것이 불과 십년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물건이 없던 옛날사람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문제는 또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생각들. 티비 사극 등에서 보여지는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물론 여러모로 불편해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시절 사람들만의 재미라던가 정취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오늘날의 필수품의 빈자리가 의외로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느날 그 시대로 뚝 떨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지식을 활용해서 왠지 나름대로 잘 살아갈수 있을것만 같다. 그런데 진짜로 과연 그럴까. 손닿는곳에 있는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삶이라는것을 상상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밤이 가장 그렇다. 해가 지고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고 나면 어땠을까. 세상이 온통 지금의 으슥한 밤거리처럼 어두컴컴했을까. 설마. 아마도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말그대로 칠흙같은 어둠이였을거다. 조명을 켜고 촬영을 하는 드라마속 사극의 밤거리는 그 당시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상상하기 조차도 힘든 그 시절의 밤의 모습, 밤문화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다. 비록 우리 민족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16세기무렵부터 산업혁명 이전까지의 유럽과 미국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 지금과 같이 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리라는 짐작쯤은 누구라도 할수 있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불편하던 불과 십여년전의 생활조차도 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이 백년 이백년전, 혹은 몇백년전 사람들의 삶을 체감하기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실린 내용들은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자료나 문헌들을 통해서 엿보는 이 시대 사람들의 밤의 생활상은 정말로 고난의 연속이고 힘겹기 그지없다.

비참하다기 보다는 어둠과 투쟁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것은 비단 하급계층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상류층 사람들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낮동안의 모든 활동은 중단될 수 밖에 없고 시각정보의 대부분이 차단된 상황에서의 사고도 잦았다. 밤에 대한 온갖 미신과 헛소문이 떠돌았으며, 특히 범죄에는 완벽하게 무방비 상태라서 밤에는 온갖 범죄자들이 판을치고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충격적이다. 어둠속에서 식사를 하고 그런 와중에도 향락을 즐기던 사람들, 잠에 대한 이야기, 남녀간의 애정행각에 관한 이야기등, 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옛날 사람들의 밤문화의 모든 것" 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자료가 되어 준다.

굵직굵직한 역사 속 사건이나 주요한 인물에 대한 자료와 비교하면, 정작 그 시대의 시대상을 들여다 볼수있는 보통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에 대한 것은 그 수가 적다. 더더군다나 밤의 문화라고 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의 생활상과의 격차로 따지자면 태양빛 아래서의 낮의 모습보다도 더욱 차이가 심한 시간인데도 말이다. 모든게 감추어지고 가리워지는 음습한 비밀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밤이 곧 인류의 삶의 절반이기도 하다. 뒤에 실린 참고문헌의 수를 보면, 이 한권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20년에 걸쳐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이 방대한 기록은 <밤의 문화사> 그 이전에 근대 인류 역사의 반쪽이기도 하다.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자료들과 중간중간 곁들여진 그림, 삽화등등, 이런 매우 흥미로운 기록을 한권의 책안에서 만날수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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