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왜 하필 오늘그새를 기억했는지 모르겠다. - P9

그 새를 보았던 길모통이에서 걸음을 멈춘다. 진작 새는 치워졌고, 그 평평한 자리에 눈이 쌓여 있다. 눈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며 생긴 미세한 구멍들을, 그 위로 바늘 도막들처럼 흩어져 있는 침엽수 잎들을 본다. 고개를 들어 그 잎들이 전나무들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한다. 높고 반듯하게 솣은 그 나무들의 줄기와 가지에도 눈이 얼어 있다. 하늘은 파랑고 차가운 햇빛이 우듬지의 윤곽을 에워싸고 있다. 한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다가, 내가 그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는다. 냉혹할 만큼 완전하게 은희 언니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14

사람 몸을 태울 때 기장 늦게까지 타는 게 뭔지 알아? 심장이야. 저녁에 불을 붙인 몸이 밤새 타더리. 새벽에 그 자리에 가보니까, 심장만 남아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어. - P19

시간이 정말주어진다면 다르게 살겠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짐승처럼 죽지않도록
다음엔 두려워 하지 않을 준비를 하겠다고
내안에 있는 가장뜨겁고 진실하고 명징한 것
그것만 꺼내놓겠다고
무섭도록 무정한세계
언제든 무심코 나를 버릴 수 있는 삶을 향해서 - P32

베란다 바깥의 차가운 어둠을 오래 내다보다가 책상 앞에 않는다. 노트북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천천히 마른세수를 한다. 나의 심장이라고 이름 붙였던 파일을 불러내자, 하나뿐인 서늘한 문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문장을 지우고 기다린다. 온 힘으로 기다린다. 파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지기 전에, 그녀가 회복되었다. 라고 첫 문장을 쓴다. - P37

정작가! 원, 알 만한 사람이 이렇게 무해? 아무리 작은 화상도 제때 치료 안 하면 무섭다는 거 몰라요? 손자르고 발 차르는게 남의 일 같아요?
- P47

그해가 지나가기 전에 당신은 늦은 밤 그녀의 방에서 물었다. 난 정말 모르겠어, 사람들이 어떻게 통념 속에서만 살아갈 수있는지,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당신에게 등을 돌린 채 화장을 지우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얼핏 어두워졌다. 거울을 통해 당신의 눈을 마주 보며 그녀는 대꾸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지만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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