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츠바이크 ㅋ 심리묘사도 좋고 이야기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교는 말도 안 되는 짓이있다. 부인은 욕망과는 다른 매력의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순수하고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하여 그는 꿈에서조차 그녀의 옷을 벗길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존재에서 풍기는 향기를 좋아했고, 그녀의 모든 동작을 음악을 듣는 것처럼 즐겼으며, 그녀의 신뢰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흥분에 취한 과도한 감정을 혹시라도 그녀에게 들킬까 봐 끊임없이 조심했다. 이런 감정은 아직 이렇다 할 명칭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형태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그의 마음 속에 숨겨진 채 뜨겁게 달귀지고 있었다. - P29

하지만 사랑은 육체의 깊은 곳에서 맹아처럼 어둡게 꿈틀거리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숨결과 입술로 사랑이라 말하며 떳떳이 고백할 때에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 법이다. 그의 감정은 고치처럼 견고한 실 껍질을 둘둘 말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감정은 혼란스러운 껍질을 뚫고 솟구쳐 나왔지만, 다시 두 배로 강력히 가슴속 깊이 떨어져 내리며 그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가 그녀와 같은 집에 살기 시작한 지 두 해가 흐른 뒤의 일이었다. - P29

그가 멕시코로 출발하기 직전 열흘 동안, 두 사람은 사랑에 도취한 상태로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그녀가 사랑을 고백한 이후 갑자기 분출된 감정의 폭발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두 사람을 가로막는 모든 저항과 장애, 윤리적 사고와 제한을 날려버렸다. 어두운 복도나 문 뒤, 후미진 구석, 그 어디에서든 잠시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가 짐승처럼 뜨겁고 탐욕스럽게 달려들었다. 손은 손을 만지기를 원했고, 입술은 입술을, 들끓는 피는 그와 같은 피를 갈망했다. 온몸이 온몸을 욕망하면서 열을 올렸다. 손발, 의복, 욕망하는 육체의 어떤 부분이든 서로를 느끼고자 모든 신경이 불타올랐다. - P45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시간이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변함이 없다고 되뇌었다. 헤어진 지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신경을 집중하고 들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다르지 않았다. 잃어버린 것도, 사라진 것도 없었다. 그녀가 있어서 예전처럼 감미로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잔잔히 미소 짓는 그녀의 입술을 열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오래전 그 입술에 키스했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가슴에 편안히 올려놓은 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고개 숙여 그 손에 입 맞추고 싶었다. 단 1초만이라도 살짝 팔짱 낀 그 손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랐다. - P49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색이 바래지 않고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땅의 영양분은 물론, 하늘의 새로운 빛이 늘 필요하다. 식물이나 모든 구성물이 그렇듯, 우리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꿈조차도 모종의 감각적 양분이 필요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각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연의 특징과 광채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 P59

그는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그림자의 기이한 유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혼 없는 형상들, 그들의 흔적에 불과한 어두운 육체들이 달아났다가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모습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별과 해후를 반복하는 이 생명 없는 형상. - P103

얼어붙고 눈내린 옛 공원에서

두 그림자가 과거의 흔적을 찾고 있구나 - P107

그녀와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탕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 P108

그러고는 더깊은 내면으로 내려가 과거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기억이라는 예언의 목소리가 재차 그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는지, 과거를 통해 그에게 현재의 진실을 들려줄 것인지에 귀 기울였다. - P108

그들이 봤을 때 정숙한 부인이 알게 된지 불과 세 시간 된 청년의 휘파람 소리를 듣자마자 단번에 그를 따라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다른 견해를 제기하고 싶었다. 나는 수년 동안 실망스럽고 지루한 결혼 생활을 경험한 여자의 경우 그 마음속에서 격렬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그런 성향도 농후하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 P120

이처럼 유일무이한 순간, 어쩌면 열정이라곤 전혀 모르던 사람만이 이렇듯 눈사태처럼 돌발적이고 허리케인처럼 맹렬히 분출하는 열정의 폭발을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면 평생 사용하지 않았던 힘들이 돌무더기처럼 가슴으로 떨어져 내리는 법입니다. 저는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이 순간만큼 놀랍고 완전히 자지러질 것 같은 일을 체험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이때 저는 무모하게도 갑자기 제 앞에 무의미한 벽을 발견하고는, 열정적으로 그 벽을 향해 이마를 부뒷쳐 쓰러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간 아끼고 쌓아온 제 모든 삶 전체를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P232

제가 얼마나 분노하고 절망했는지를 당신께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을 좀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삶 전체를 누군가에게 내맡겼는데, 그는 자신을 파리처럼 취급하며 태연히 손을 흔들어 쫓아버리려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분노가 다시 파도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