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람. 뭐 이런 이야기가 다있고 이게 이렇게 연결되다니...
투명한 필름지를 덮어 반창고 쪼가리로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고정한 나선형으로 말린 여자의 긴 진갈색 머리카락 한올, 뱅자맹 라비에 책의 책장처럼 첫사랑 소녀에게서 슬그머니 절취한 기념품일까. 아니면 소녀에게서 직접 건네받 은 사랑의 담보물? 어쩌면 조르주 자신도 답례로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을 주었고, 세상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그 가소로운 전리품 역시 서서히 추억이 되어 망각속에 잠겼는지도. 사빈은 잡동사니 물건들과 엽서들을 상자 속에 다시 넣고 괴로운 작업을 이어갔다. - P32
그들이 나누는 짤막한 문장들은 입가에서 올이 풀려 말없음표가 된다. 말은 혀에 올라앉는 순간 무효화되거나 부적절한 것이 되어 입안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말은 와해되고, 생각은 분산되고, 시간은 초시간의 괄호 안에서 흔들린다. - P51
어쨌거나 세상에서 별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는 건 행운인지 모른다. 너무 눈에 띄지도,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홀가분히 지낼 수 있다면 그래서 환멸과 상처에도 덜 노출된다면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제 갈 길을 갈 수 있겠지. 단조롭긴 해도 평화로운 길임이 틀림없다. - P94
"자거라, 자, 이건 꿈이야, 꿈속의 애무, 꿈속의 입맞춤..." - P135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창조물과 창조자 사이의 교감이 끝나는 순간, 그림은 신비로운 대상이 되어버린다. 창조자는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누구나 나중에 경험하는 일이지만, 그에게 그림은 영원토록 친숙한 욕구의 해소다. 그림을 통해 이 욕구가 유례없는 방식으로 예기치 못하게 해결된다." - P221
굳게 결속된 이 ‘우리‘를 통해 그가 동시에 깨달은건, 셀레스트가 그를 용서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 첫날부터 그가 유약하고 비겁하고 경솔하게 안겨준 실망과 고통을 셀레스트는 모두 용서한 것이다. 그의 죄를 사해준 것이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거짓과 위선에 굴하지도, 체념하지도 않았으니까. 그가 감히 도전해볼 수 없었던 것을 몸소 체험할 용기를 냈던 여자였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사랑하고, 욕망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 그녀는 그 길을 끝까지 좋았고, 그 결과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를 그는 경탄해마지않았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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