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도선생님~!! 장편이든 단편이든 다 좋다.

나는 수많은 자살이나 살인이 그 순간 손에 총이 쥐어져 있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고 믿는다. 총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 이 역시 심연이자 미끄러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45도로 기울어진 경사다. 따라서 무언가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당신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말없이 그녀의 손에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자각이 경사에 선 그녀를 미끄러지지 않고 버텨내게 했는지도 모른다. - P368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나의 사랑이 두려웠던 걸까, 정말 내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보고는 도저히 그 질문을 감당할 수 없어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 - P394

하지만 젊음이란 그런 거다! 나는 그녀의 젊음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기뻤다. 왜냐하면 젊음이야말로 진정한 관대함이기 때문이다. 비록 파멸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을지라도 괴테의 위대한 말은 빛을 발하지 않던가. 젊음이란 단 한 방울만 있어도 살짝만 마음이 기울어도 관용을 베풀기 마련이다. - P341

이처럼 온순한 여자가 공격적으로 나올때는 도를 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며, 순수한 성품과 수치심 때문에 자신이 먼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하기도 불가능해지는 법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런 여자들이 때로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게 난폭해지는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우리의 이성을 스스로 의심케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영혼의 타락이 몸에 벤 여자는 언제나 모든 일에 별것 아닌 듯 굴고, 역겨운 짓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당신보다 우월하다는 듯 단정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기 마련이다. - P361

정말 못 견디게 궁금하다. 과연 그녀는 나를 존경했을까? 혹시 나를 경멸했을까, 아니었을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멸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어째서 겨우내 나는 그녀가 나를 경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못했을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 엄격한 놀람이 어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 엄격한 눈빛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나는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나를 경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되돌릴 수 없으리만큼, 영원히 알아버렸다! 아, 경멸해도 좋다, 평생을 그래도 좋다. 그녀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 살아 있기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걸어다니고 말도 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P395

나에게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 온 존재를 통해 듣고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에게도 예전에 많은 것들이 존재 했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로는 그때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게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내 안에 조금씩 뿌리를 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일도 거의 사라졌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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