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최고다. 사랑을 할 줄 아는 인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우리의 생각은 연기처럼 올라가 하늘을 흐리게 만듭니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하늘이 내 손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미 저녁이지만, 당신에게 오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전하지 않은 채로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네요. - P17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합니다. 죽음의 어두움을 이미 경험한 푸름 말이에요 나의 문장이 미소 짓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갈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끌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P21

"마리아예요." 이 말이야말로 삶에서 생각해야 할 전부다. 자신의 목소리, 자신이 뱉은 말 그리고 강렬한 침묵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인간 외에 다른 수수께끼는 없다. - P30

우리는 말을 할 때 바로 그 말속에 머물며, 침묵할 때면 바로 그 침묵 속에 머문다. 하지만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자리를 정리하고 벗어나, 말과 침묵의 고역에서 해방된 희미한 선율 속으로 멀어져 간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멀어져 가는 한 젊은 남자처럼, 우리도 멀어져 간다. 목적지를 안다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 안에 있다는 건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연약한 인생의 오솔길에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A라는 점에서 B라는 점으로, 한쪽 빛에서 다른 쪽 빛으로 건너간다.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그사이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불확실함을 견디고 주저함에 미소지으며, 다른 모든 것은 잊은 채로 우리 안의 희미한 생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 P54

그래도 인젠가 끝은 찾아온다. - P57

단 한 번의 봄이 일생의 모든 봄이었고, 단 한 순간의 삶이 모든 순간을 살아낸 삶과 같았다. 사랑은 누군가가 강처럼 별처럼, 금은화처럼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시작된다. 그 꽃의 향기는 나를 취하게 하고 어제는 그녀를 취하게 했다. 더는 이 곳에 있지 않고 땅속에 머물다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 천사들 곁에 있는 그녀를. - P68

두 눈은 영원에 둘러싸인 채 나는 신비로운 대기를 삼킨다. 그리고 나는 쓴다. 이것이 대답 없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요, 함께 일어나는 선율이며, 시간의 잎사귀에서 들려오는 날갯짓 소리다. 당신이 더는 이 세상에 없기에, 나는 당신에게 미모사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는 없지만 미모사는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알려준다. 모든 고결한 것은 죽은 자들의 나라를 건너 우리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 P70

각 페이지에 쓰인 모든 단어들이 너에 관한 것임을 너와 너를 향한 나의 사랑 사이. 너와 너에게 전할 나의 단어들 사이, 그리고 너와 밤에 잉태된 단어들 사이의 황홀한 우연의 일치에 관한 것임을. 그 단어들은 너를 따라 내 영혼에 들어와 나를 평화롭게 만드는 무질서가 낳은 것이었다. - P76

내가 글을 쓸 때 네가 방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만을 위해서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를 알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만나기 전 어두웠던 무한한 시간 속에서조차 나 는 너를 위해 글을 썼다. 이 메마른 사막 속에서 난 사랑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사랑이 올 수 없는 불가능 속에서 사랑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밤보다 더 격렬한 단어로, 밤보다 더 어두운 단어로 글을 썼다. 밤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더 깊은 어두움으로 밤이 흩어 지기를 바라면서. 그러던 내가 지금은 사랑 안에서, 밝 은 빛 안에서 글을 쓴다. 빚을 지나기 위해, 더는 이지러지지 않는 빛에 도달하기 위해, 세월의 더딘 윤회에도 길을 잃지 않는 빛을 얻기 위해 빛보다 더 환한 단어들로 글을 쓴다. - P76

너와 함께 글을 쓴다. 밤과 낮의 단어들, 사랑의 기다림과 사랑의 단어들, 절망과 희망의 단어들. 나는 너와 함께 이 단어들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본다. 우리만이 알고 있는 이 깨달음 속에서 글을 쓴다. - P77

너에게 쓴다. 이 수첩뿐만이 아니라 내가 쓰는 모든 것 안에 네가 있다. 몽펠리에로 보내는 이 글의 처음 부터 끝까지 네가 있다. 단지 상황에 따른 것만은 아닌, 당신에 대해 말한다는 내가 처한 그 불가능성 안에 네가 있다. 네가 내 안에 있는 이 밤에, 단어들에서 비롯 된 밤과 뒤섞인 네가 있는 빛나는 밤에 나는 글을 쓴다. 너에게 쓴다. - P77

너를 불러본다. 이 페이지 위에서 너를 부른다. 이 숲에서, 이 연못 근처에서, 이 길 위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영원으로 닿던 이 땅 위에서 너를 부른다. - P77

"나는 책에 속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책이나 세상 그 무엇으로 인해 그녀에게서 단 일 초라도 멀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끝내 허무의 입에 삼켜지고 대리석처럼 단단한 이에 찢어 발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 P81

나에게 이상적인 삶이란 책이 있는 삶이며 이상적인 책은 어느 여름날 쥐라‘의 길에서 마주친 사자상 분수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던 차가운 물과도 같다. - P93

아름다움에는 부활의 힘이 있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천국에 들어서지 못하는 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 - P129

세상은 성인들로 넘쳐난다. 순교자들 말이다. 나는 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늘고 있는 그들을 ‘알츠하이머‘라 부른다. 점점 더 늘어나는 그 병이 우리에게 기본으로 축소된 삶을 선물한다. 고단하고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들, 물건을 사고 타인을 질투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부인 현대 생활의 모든 질서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이들에게는 삶이 아닌 삶, 한 번도 삶이었던 적이 없는 삶은 끝이 난 것 이다. 그들의 눈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두려울 정도로 열려있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허물어 뜨리는 형이상학적 질병의 먹잇감이다. 우리는 그들을 살아있는 보물처럼 여겨야 한다. - P133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천사의 손을 찾는다. 천사가 존재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은 한 때 그들과 가까웠던 죽은 이들에게도 말을 건넨다. 모든 것을 잊은 그들이지만 오래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들은 잊지 않는다. - P134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알아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다. 비록 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었음에도 내가 누군지 여전히 알고 계셨고,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은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것들보다 훨씬 커다랗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질문들에 교묘히 돌려 답했다. 내가 누군지 물으면 ‘우리가 잊지 않은 녀석‘이라 하셨고, 어머니에게는 ‘최고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쉽게 기억을 잊는 이 사람들은 중요한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와 다른 점이다. - P134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오래전부터 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웃음소리를 듣는다. 곧장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그 푸르름을, 당신을 위해 여기 이 책 속에 담는다. - P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