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떠올랐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소년 먼저 그의 이름은 유수프였다. 그는 열두 살 때 갑자기 집을 떠났다. 그는 그때를 하루하루가 전날과 똑같은 가뭄철이었다고 기억했다. 예상치 않은 꽃들이 피었다가 죽었다. 이상한 벌레들이 돌 밑에서 종종걸음으로 나와 뜨거운 햇빛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태양은 멀리 있는 나무들이 대기 속에서 떨게 만들었고 집들이 부르르하며 숨을 헐떡이게 만들었다. 저벅저벅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구름이 피어올랐고 낮시에는 날카로운 정적이 감돌았다. 계절의 막바지에는 그런 순간들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 P9

아지즈 아저씨는 객실에서 시에스타‘를 즐기며 오후를 보냈다. 유수프에게는 분통 터지게 시간이 자꾸 뒤로 미뤄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아버지도 식사 후에 매일 그러듯, 자기 방으로 물러갔다. 왜 사람들이 마치 순종해야 하는 법이라도 되는 듯 오후만 되면 낮잠을 자려고 하는지, 유수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휴식이라고 불렀다. 이따금 어머니마저 그들의 방으로 들어가 커튼을 여몄다. 그도 한두 번 시도해보았지만, 너무 지루한 나머지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두번째 시도에서는, 깨어서 침대에 누워 있지만 형벌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P23

"아지즈 아저씨와 같이 가는 거야."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향해 작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수프가 바보 같은 소리를 한다 싶을 때 짓던 미소였다. 유수프는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웃으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유수프는 몸을 피하면서도 함께 웃었다. "기차를 타고 가게 될 거야." 아버지가 말했다. "저멀리 해안까지 말이다. 너, 기차 좋아하잖니? 바다까지 가는 길이 재미있을 거다." 유수프는 아버지가 좀더 말해주기를 기다렸지만, 왜 그는 이 여행이 좋아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그의 허벅지를 살짝 치더니 가서 어머니가 짐 꾸리는 것을 좀 보라고 말했다. - P29

"그러면 형은 집에 가려면 얼마나 오래 일을 해야 해요? 나는 얼마나 오래 여기 있어야 하죠?" "네 아버지가 더이상 빛이 없어지거나 죽을 때까지." 칼릴이 쾌활하게 말했다. "뭐가 문제야? 여기 있는 게 싫으냐? 그는 좋은 분이야, 사이드 말이다. 너를 때리거나 그 비슷한 걸 하지도 않잖아. 네가 존경심을 보이면 그가 너를 돌봐주고 네가 잘못되게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네가 밤에 울고 그렇게 무서운 꿈을 계속 꾼다면…… 너는 아랍어를 배워야 해. 그러면 그가 너를 더 좋아할 거다." - P40

손님들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도시에 왔다 돌아가는 시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난과 물가에 대해 불평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듯 자신들의 거짓말이나 잔인함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 P46

칼릴은 거기서 말을 멈추고 더이상 계속하지 않았다. 유수프는 칼릴이 말하는 동안 그의 조롱이 비참함으로 바뀌는 것을 느끼고, 그의 기분을 풀어줄 말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 집안에 미친 늙은 여자가 있다는 이야기에도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어머니가 그에게 해주던 이야기들과 정확히 같을 것이었다. 그러한 이야기들 속의 광기란 잘못된 사랑이나 유산을 훔치기 위한 주문 완수되지 못한 복수 때문에 존재할 것이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저주가 풀릴 때까지 광기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P57

유수프에게 그것은 몇 년에 걸쳐 사로잡혀 살면서 얻게 된 평정심을 깨뜨리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지즈 아저씨의 가게에서 불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볼모로 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즉 아버지가 진 빚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그가 아지즈 아저씨에게 저당잡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수년에 걸쳐 너무 많은 돈을 빌렸고, 그것이 호텔을 팔아서 갚을 수 있는 수준 이상이라는 것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혹은 그의 아버지가 운이 없었거나, 자기 것이 아닌 돈을 어리석게 써버렸는지도 몰랐다. 칼릴은 그에게 그것이 사이드가 일하는 방식 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결과 그에게는 뭐든 필요해질 때, 그 필요한 일을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드에게 돈이 급해지면, 몇 명의 채권자를 희생시켜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 P70

하기야 저애는 담배를 피우기에는 너무 아름답네. 어부들이 말했다. 담배는 저애를 망칠 뿐이지. 담배는 악마의 일이고 죄악이니까. 하지만 그게 없으면 가난한 사람이 어떻게 살겠어? - P73

"모든 것에는 치러야 할 값이 있는 거죠. 저애가 머지않아 그걸 깨달았으면 싶네요." - P93

장사꾼 중 하나는 어느 유럽인이 쓰러져 죽었는데 다른 사람이 오더니 숨을 불어넣는 것을 보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뱀들한테도 독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인의 몸이 완전히 망가지거나 손상되지 않고 부패가 시작되지만 않으면 다른 유럽인이 그를 살려낼 수 있대요. 그래서 죽은 유럽인을 보면 손도 대지 말고 뭘 가져갈 생각도 하지 말아야 된대요. 다시 살아나서 죄를 뒤집어 씌울 테니까요. - P101

"가족을 위해 더 좋은 삶을 살겠다는 게 죄가 되니?" 하미드가 물었다. 후세인에 대한 경멸감이 묻은 목소리였다. "가족을 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게 죄가 되니? 그게 무슨 잘못이니? 너한테 묻는 거다. 내가 원하는 건 내 가족을 위한 작은 집을 짓고 내 자식들에게 좋은 남편과 아내를 찾아주고, 교양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사원에 갈 수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저녁에 친구들과 이웃들과 같이 앉아서 정답게 얘기를 나누며 차도 한잔하고 싶고……… 그게 전부야! 내가 누구를 죽이고 싶다고 했니? 누구를 노예로 만들고 싶다고 했니? 아니면 무고한 사람을 약탈하겠다고 했니? 나는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하는 작은 가게 주인일 뿐이야. 스스로를 위해 아주 작은 것을 할 뿐이라고 - P129

"가능할 때 그런 미덕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게." 그가 말했다. "우리 안의 이런 감정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으니까 말이야. 곧 세상이 우리를 유혹해 죄악과 불결함으로 이끄니까 말일세. - P138

그의 말에 따르면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서는 해가 한밤중까지 떠 있다고 했다. 추워지면 모든 물이 얼어붙는다고 했다.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그 위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강과 호수가 두껍게 언다고 했다. 바람은 항상 불고 때때로 얼음과 돌이 섞인 돌풍이 분다고 했다. 밤에는 악령들과 정령들이 바람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고통스러울 때 그러듯이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그들을 도우려고 밖에 나가는 사람은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겨울이 깊어지면 바다도 얼고, 야생 개들과 늑대들이 도시의 거리에서 날뛰면서 살아 있는 것은 사람이든 말이든 모조리 잡아먹는다고 했다. 그의 아저씨가 말하기를, 러시아인은 문명화되지 않아 독일인과 다르다고 했다. 언젠가 그들이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가 어느 작은 도시에 들어갔더니 그곳의 모든 사람이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잔뜩 취해 있었다고 했다. - P142

"우리 물건 없이는 그럴 수 없다고 전해라." 상인이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숨이라면 가져가라고 해라.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해라. 그러나 우리를 살려주겠다면 우리 물건도 달라고 해라. 장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가겠느냐? 물건 없이는 가지 않겠다고 전해라." - P211

그는 부모에 대한 가책을 느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수년 전에 그를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그가 그들을 버릴 차례였다. 그가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안도감은 이제 끝났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 자유롭게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언젠가 그들한테 들러 그런 삶을 시작하도록 어려운 교훈을 가르쳐준 것에 고맙다고 할지도 몰랐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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