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정말 천재다. 여행기가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있을까?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 P15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 P16

그러나 예의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 P16

아일레이 위스키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에게 있어서
‘아일레이의 싱글 몰트‘라는
말은 은혜로운 교조님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다.

"Islay and whisky come almost as smoothly off the tongue as Scotch and water" - P27

"블렌디드 위스키-소위 스카치-는 안 마십니까?" 내가 그런 질문을 하자, 상대방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유를 하자면, 결혼을 앞둔 자기 누이동생의 용모나 품성에 대해 남이 험담을 늘어놓을 때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물론 마시지 않아요" 하고 그는 대답했다. - P37

"맛 좋은 아일레이 싱글 몰트가 코앞에 있는데, 왜 일부러 블렌디드 위스키 같은 걸 마신단 말이오? 그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트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 P37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위스키로 축배를 든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것이 아일레이 섬이다. - P64

아일랜드
로스크레아의 퍼브에서,
그 노인은 어떻게 튤러모어 듀를 마셨는가?

어디를 가도 풍경은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그림엽서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내미는 것은 감동이나 경탄보다는 오히려 위안과 진정(鎭)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는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면 온화한 어조로 몹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데(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일랜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나라이다. - P85

아일랜드를 여행하노라면, 그처럼 온화한 아일랜드적인 나날들이 조용히 우리 앞에 하나하나 쌓여간다. 이 나라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투나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진다. 하늘을 바라보거나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차츰 길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실로 다시는 경험하기 힘든 멋진 나날이었음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좀더 나중의 일이다. - P88

퍼브란 꽤 심오한 곳이다. 말하자면, ‘율리시즈‘적으로 심오하다. 비유적으로, 우화적으로, 단편적으로, 종합적으로, 역설적으로 호응적으로, 상호 참조적으로, 켈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심오하다. - P108

그는 그 위스키를 마셨다.한 모금 마시고 뭔가를 생각하고, 또 한 모금 마시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론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코드를 잡는 버드 파웰의 왼손의 리듬이 만년에 들어 간간이 느려지는 것이 의식적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기술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건지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젯밤 마이크 타이슨이 라스베가스의 링 위에서 대전 상대의 귀를 물어뜯은 것은 감량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P119

그럴 때면, 여행이라는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 준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해도, 한참이 지나 깨닫게 되는 것을.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애써 여행 같은 걸 한단 말인가?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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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12-27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음보다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새파랑 2022-12-27 18:48   좋아요 1 | URL
앗 ㅋ 저는 누가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 같아서 죽는게 더 무섭습니다 😅 요 문장 좋아요~!!

모나리자 2022-12-27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하루키로 넘어가셨군요.ㅎ
하루키와 위스키 성지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며칠 남은 12월 좋은 마무리 하시고 새해에도 화이팅 하세요. 새파랑님.^^

새파랑 2022-12-28 07:27   좋아요 1 | URL
돌고돌아 하루키 입니다 ㅋ 하루키 에세이 너무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