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좋다. 골드문트의 기나긴 여행을 함께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건 좋은거라 생각한다. 명작 인정!!






아, 이젠 농부들이 왜 그랬는지도 알겠어. 그들은 어제 우리를 동네에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잖아.맙소사,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졌어. 흑사병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흑사병이야, 골드문트! 그런데 자네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 안에 있었잖아! 아마도 자넨 죽은 사람들을 건드리기도 했겠지! 물러서!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아! 자넨 틀림없이 감염되었어. 골드문트, 미안하지만 나는 떠나야겠네. 자네와 함께 있을 수 없다구. - P312

생명은 아름다운 것이고, 행복은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이며, 젊음 역시 아름답지만 금방 시들고 마는 것이다. - P323

벌써 세상의 모든 현인과 성인들이 그런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었지.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아.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이 당신한테 흡족하지 못하고 기쁨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바로 지금 이 오두막을 불살라버리고 말겠어. 그리고 우리 모두 자기 길을 가는 거야. 잘 생각해 봐, 레네. 얘기는 이것으로 충분하니까. - P326

그렇다. 슬픔도 지나가 버렸고, 기쁨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절망도 지나가 버렸다. 그런 감정들은 흘러가 버렸고, 퇴색해 버렸다. 그 감정들의 깊이와 가치도 상실되었고, 이제 드디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시절이 온 것이다. - P361

일찍이 소년 시절에도 이 준수하고 준엄한 얼굴을 마주 보며,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이 깊은 눈을 마주 보며 속수무책으로 울었던 적이 있는 것이다. 또다시 그럴 수는‘없었다. 이제 그의 인생에서 더없이 기구한 이 순간에 나르치스가 마치 유령처럼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인지도 몰랐다. 이제 또다시 그의 앞에서 흐느껴 울어야 한단 말인가?아니면 기절하고 말 것인가? - P400

지나온 인생이 커다란 세 단계로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르치스에 의존하고 또 그에게서 벗어났던 시절, 자유를 누리고 방황하던 시절, 그리고 다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성숙과 수확이 시작되는 시절. - P416

더 이상 의존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 P416

지나온 인생이 이토록 지리멸렬하고 황폐할 수 있단 말인가. 화려한 추억의 잔상은 풍부해도 수많은 조각으로 낱낱이 쪼개져 있으며 아무 가치도 없는 빈곤한 사랑일 뿐인 것이다. - P419

지나온 인생 모두가 이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하고, 달아나고, 잊혀지고, 빈 손에 얼어붙은 가슴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다. - P420

자네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나쳐 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을 바친단 말일세. 그렇게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덧없는 것이 최고의 존재로, 영원을 닮은 존재로 숭고해진다네. 우리 같은 사상가들은 하느님의 존재에서 세속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사랑하고 재창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일세. - P445

이 마리아 상은 아주 잘 만들어졌어. 그렇지만 들어보게, 나르치스,이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청춘을 바쳐야만 했네. 청춘의 방황과 사랑, 뭇 여성에 대한 구애가 필요했지. 그 청춘의 추억이야말로 나의 창작의 원천일세. 이제 곧 그 샘물도 말라버릴걸세. 가슴도 메말라가고. 이 작품이 완성되면 한동안은 휴가를 떠날 생각이네. - P452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런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 P457

오늘은 내가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며, 자네가 늘 나한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자네가 내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털어놓아야겠네. 이런 이야기가 자네한테는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네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고, 자네한테는 사랑이라는 것이 진귀한 게 아닐테니까. 자네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한테 귀찮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다르다네. 내가 살아온 인생에는 사랑이 빈곤하고, 나의 인생에서 무엇보다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랑일세. - P469

그런데도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건 자네 덕분일세. 자네만은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사람들 가운데 오직 자네만을 말일세. 이게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네는 어림도 못할걸세. 그건 사막에서 솟구치는 샘물이요,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와 같은 걸세. 나의 마음이 황폐하게 메마르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이 닿을 수 있는 자리 하나가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네 덕분일세. - P470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자네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 어머니가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일세. 어머니가 안 계시면 죽을 수도 없어. - P4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