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네번째 읽는 것일듯. 다시 읽어도 좋고 새로운게 보인다.










"여행은 길동무, 세상은 인정"

"우연한 만남이란 인간의 감정을 위해서 꽤 소중하다, 라는 얘기일 거야. 간단히 말해서" - P47

"전생의 인연 - 설사 하찮은 일이라도 이 세상에 완전한 우연은 없다는 뜻이야." - P64

그녀는 나에게 무척 강하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인상을 준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름다운 (혹은 느낌이 좋은 중년 여성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좋을 텐데, 하고,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사에키 씨가 실제로 내 어머니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론적으로 말한다면 조금은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어머니의 얼굴, 이름조차 모르니까. - P76

안내를 해주는 사에키 씨라는 사람은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날씬한 여성이다. 그 나이치고는 키가 큰 편인지도 모른다. 푸른색의 반소매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연한 크림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매우 자세가 좋다. 머리칼은 길고 뒤에서 가볍게 묶었다. 고상하고 지적인 얼굴이다. 눈이 아름답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다. 잘 표현할 수 없지만 어딘지 완결된 느낌의 미소다. 그것은 나에게 조그만 양지를 연상시킨다. 어떤 종류의 깊숙한 장소에만 생기는 특별한 형태의 양지 같은 것을. 내가 살던 노가타의 집 뜰에도 그런 장소가 있었고, 그런 양지가 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양지바른 곳을 좋아했다. - P76

"자네의 문제점은 말이야, 이건 내 생각이지만, 자네 그림자가 조금 희미한 게 아닐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생각한 건데, 땅바닥에 있는 그림자가 보통 사람의 반 정도밖에 안 보였거든." - P96

"왜냐하면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이니까." - P100

지금부터 백 년 뒤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나를 포함해서) 지상에서 사라져, 먼지나 재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물이 허무한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에 날려 당장이라도 흩날려 없어질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 두 손을 펼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악착같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 P103

"다무라 카프카라고?"

"네, 그런 이름입니다."

"이상한 이름이군."

"하지만 그것이 제 이름입니다" 하고 나는 주장한다.

"물론 너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몇 편 읽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 《성》과 《심판>과 <변신>, 그리고 이상한 처형 기계가 나오는 이야기…………."

"<유형지에서>"라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야.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있지만, 카프카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쓸 수 없지."

"저도 단편 중에서는 그 이야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 P106

나는 나 혼자가 되어 페이지 사이의 세계에 몰입해 간다. 나는 그 감각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 P108

이상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릇으로서의 육체만이 임시로 거기에 남아 집을 지키고 갖가지 생체 레벨을 조금씩 저하시켜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는 동안, 본인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서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체이탈‘이라는 단어가 제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말을 알고 계십니까? 일본의 옛이야기에 자주 나오는데, 혼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떠나 천릿길을 뛰어넘어 어딘가 먼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중요한 볼일을 보고 다시 본래의 육체로 돌아온다는 얘기입니다. - P122

이윽고 나는 소나무 밑에 놓아둔 배낭을 발견한다. 왜 나는 그런곳에 짐을 놓아두고 일부러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쓰러진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기억은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소중한 배낭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배낭 주머니에서 소형 손전등을 꺼내 대충 배낭 안을 확인한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 것 같다. 현금을 넣은 주머니도 그대로 있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 P127

이윽고 나는 소나무 밑에 놓아둔 배낭을 발견한다. 왜 나는 그런 곳에 짐을 놓아두고 일부러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쓰러진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기억은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어쨌든 소중한 배낭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배낭 주머니에서 소형 손전등을 꺼내 대충 배낭 안을 확인한다. 없어진 물건은 없는 것 같다. 현금을 넣은 주머니도 그대로 있다. 나는 휴우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 P127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그냥 고양이를 못살게 굴고 고통을 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그렇게 함으로써 즐거운 기분이 되는 거지요. 그렇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버젓이 살고 있다니까요." - P147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무서워. 기억을 빼앗긴 그 네 시간 동안에, 나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다치게 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어. 만일 내가 실제로 범죄에 관여했다면, 설사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법적으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지?" - P159

장황하게 두서없는 글을 썼습니다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남편이 종전 직전에 필리핀에서 전사했을때, 사실 저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그저 깊은 무력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절망도 분노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방울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남편이 어딘가의 전쟁터에서 젊은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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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6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변의 카프카는 김춘미 교수님의 번역이네요.
생각해보면 이 시기만해도 하루키 선생의 신작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시간되면 다시 읽어봐도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새파랑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2-11-07 06:26   좋아요 1 | URL
전 하루키 작품중에 해변의 카프카가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다시 읽어도 너무 좋습니다 ^^ 서니데이님 즐거운 한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