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소세키의 생각이 너무 좋고 아프다.

"저는 지금 제가 지니고 있는 이 아름다운 마음이 세월이라는 것 때문에 점점 바래 가는 게 두려워 견딜수가 없습니다. 이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멍하니 혼이 빠진 채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면, 그게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 P29

다음 길모퉁이에서 여자는 또 "선생님께 배웅을 받다니 영광입니다." 하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다. 여자가 간단히, 그러나 또렷하게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면 죽지 말고 살아 주십시오." - P30

불유쾌함으로 가득 찬 인생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는 자신이 언젠가 반드시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죽음이라는 경지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라는 것을 삶보다는 더 편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어느 때는 그것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지고한 상태라고 여길때조차 있다. - P31

"죽음은 삶보다 고귀하다." - P31

그녀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보석처럼 소중히, 그리고 영원히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운 추억은 그녀를 죽음 이상으로 괴롭히는 처절한 상처 바로 그것이었다. 상반된 이 둘은 마치 종이의 안팎처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모든 것을 치유해 주는 <세월>의 흐름을 좇아가라고 했다. 그녀는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 소중한 기억은 점점 바래 갈 것이라고 탄식했다. - P33

나는 집으로 돌아와 또 유리문 안에 앉아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나와 저 이발소 주인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P67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남이 죽는 건 당연한 듯한데 자신이 죽는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전쟁에 나간 경험이 있는 어떤 남자에게 "그렇게 옆에서 대원이 하나둘 쓰러지는 걸 보면서도 자기만은 안 죽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있고말고요.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 P85

나 또한 어쩌면 그런 사람들과 똑같은 기분으로 비교적 태연히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다. 죽을 때까지는 누구든 살아 있을 테니까 - P85

비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물론 나는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깊숙하고 폭 좁은 우산 꼭대기에서 새어 들어오는 빗물이 나무 손잡이를 타고 흘러내려 내 손을 적시기 시작했다. 인적 드문 그 골목길은 모든 흙탕을 빗물로 씻어낸 듯, 흔히 게다 끝에 걸리는 질척거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위를 쳐다보면 어두웠고 밑을 내려다보면 외로웠다. 줄곧 걷고 있는 탓도 있었겠지만, 내 주변에는 무엇 하나 내 눈을 끄는 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은 이 날씨며 이 주변과 너무 닮아 있었다. 나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부식시킬 것 같은 불쾌한 덩어리가 항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음울한 얼굴로 멍하게 빗속을 걸어갔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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