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읽은 에세이인데 좋았다. 커피와 담배는 좋을 수 밖에 없다.

그때까지 나는 스스로를 대접하고 아낀다는 의미가 뭔지 잘 몰랐다. 진정한 휴식의 의미도 몰랐다. 무엇을 원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계획한 적도 없고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었다. 그저 세상이 나를 몰라주고 내 자리가 없다고 불평하면서. 한마디로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대접해야 채워지는 허기를 못 알아보고 공허한 마음으로 먼 곳까지 와서 끝없이 카페를 방문하며 힘들게 900킬로미터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이 그제야 보였다. - P16
커피는 유일하게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영역이고 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영역이었다. 커피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대접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커피는 민주적이다. 커피는 쉽게 손을 내밀어준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가 발을 반쯤 걸치고 삶의 여유를 꿈꿔볼 수 있게 한다. 커피마저 없다면 내 삶은 무미건조하고 비참해질 것이다. 커피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거기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 P18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게 되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스웨터에 난 작은 구멍이라던가, 담배를 피울 때의 미묘한 손의 위치라던가. - P23
커피를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58
나의 담배는 그렇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담배가 있겠지. 담배에 불을 붙일 때면 함께 불려 나오는 기억들. 방처럼 펼쳐지는 기억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집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집. 그렇지만 무게가 전혀 나가지 않는 집. 담배에 불을 붙이면 그것들은 안정감 같은 특수한 감정의 형태로 몸에 잠시 내려앉는다. 그것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기억을, 감정을 잠시 소환하는 의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 P67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훌륭한 작가가 되었을 텐데, 곧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이닥쳤다. 커피와 담배 없이 숙면의 힘으로 훌륭한 작품을 생산하는 삶보다는, 그냥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괴로워하며 그럭저럭한 글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고통도 있고 행복도 있고 많은 것들을 견디는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핑계고 그냥 내 몸은 카페인과 니코틴을 원했다. 나는 금욕이 싫었다. 나는 그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 싫고 미웠다. - P85
혼자 있다고 꼭 고독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고독은 물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벗 삼고 있다. 반면 내가 혼자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반대로 사랑은 상대방이 거기 있을 때조차 그가 그리운 상태를 말한다). 고독 속에 있다는 것은 상대방이 거기,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과 내가 모두 결핍되어있는 단절도 있다. - P95
빗대어 말하면, 커피와 담배는 고립을 고독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커피와 담배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해준다. 각자의 안에는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부분이 있고 그것이 일으키는 중력의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스스로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면 더 알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면의 어떤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성숙해진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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