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읽었으나 이제 밑줄긋기 시작
















부친이 죽은 뒤로 그녀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는데, 애인마저 떠나자 더욱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이 드물어졌다. 몇몇 부인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만용을 부렸으나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집에 사람이 산다는 유일한 표지는 한 흑인 남자가 - 당시엔 청년이었다 - 장바구니를 들고 그 집을 들락거린다는 것뿐이었다. - P10

당시 우리는 그녀가 미쳐 버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녀로선 그럴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그녀의 부친이 쫓아냈던 그 많은 청년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바로 그 대상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처지가 되면 그렇게 될 거라고 이해한 것이다. - P13

그녀는 고개를 한껏 높이 치켜들고 다녔는데, 심지어 우리가 이제 그녀는 몸까지 버렸다고 여길 때조차 그랬다. 그것은 그리어슨 가 마지막$인물의 위엄을 인정하라는 요구, 아니 그보다 더한 요구처럼 보였다. 또한 속세와의 접촉을 통해 자신이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몸짓 같기도 했다. - P15

한참 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움푹 파인 그 해골의 환한 미소를 내려다보았다. 그 주검은 한때는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음에 분명했지만, 지금은 사랑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자신을 저버린 일그러진 사랑마저 정복해 버린,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잠옷 아래에서 썩어 간 그의 잔해는 그가 누운 침대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위에, 그리고 그의 베개 위에도, 끈질기게 견뎌 온 세월의 먼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 P21

다른 사람에게 쇠나 폭약이 그렇듯, 아버지에게는 불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깊이 내재한 주요한 요소, 그것이 없다면 숨을 쉬어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요소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무기였다는 것을, 그래서 존중하고 때때로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 P29

멈추지 않는다면,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다면, 다시는 저 사람 얼굴을 보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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