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00쪽 읽었는데 너무 좋다

사랑이 눈먼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너한테는 눈먼 상태가 어쩌면
세상을 보는 한 방식인지도 모르겠구나………….

울지마라. 저러라고 만든거야. 저 높은곳에서 녀석은 기분좋을거야. - P14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사람으로 여겼다는 거냐. 생각해보거라. 그 멋진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옳아. 한 평생을 연에 바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광기가 있는 게 분명해. 다만 해석이 문제 될 뿐이지. 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 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로맹가리 미쳤다 ㅋ) - P18

6월 중순에 배가 잔뜩 불러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내 앞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샛노란 금발의 소녀가 보였다. 그 아이는 나를 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뭇가지 아래엔 응달과 양달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내 눈엔 이 명암의 유희가 릴라 주위에서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이유도 본질도 이해하지 못했던 그 감동적인 순간에 나는 어떻게 보면 예고를 받은 셈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떤 내적 힘인지 약점인지 모를 뭔가에 이끌려 행동을 했는데, 그것이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이 되리라는 건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였다. 그 엄격한 금발의 환영에게 딸기 한 줌을 내밀었던 것이다. - P25

나는 공부를 했고, 작업실에서 나의 후견인을 도왔다. 하지만 흰옷 차림으로 손에 밀짚모자를 든 금발의 소녀가 내 곁에 찾아오지 않는 날은 드물었다. 에르비에 선생님이 아주 정확히 말했듯이 이건 분명히 "기억력 과잉"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일로 고통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치 점령하에서 그토록 뜨겁게, 그리고 그토록 위험하게 기억해주길 부르짖던 모든 일을 세심히 멀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 지 3~4년이 흐르고도 나는 딸기가 열리기만 하면 여전히 내 바구니를 채웠고, 너도밤나무 아래 누워두 손을 목덜미 아래 넣고 눈을 감곤 했다. 그녀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설탕 봉지도 잊지 않았다. 물론 세월이흐르면서 이 모든 일에도 어느 정도 미소 짓게 되었다. 나는 삼촌이 "파랑 좇기"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 자신과 나의 과잉 기억력을 조롱하는 법도 배웠다.

(기억력 과잉이 과연 불행하기만 한걸까.) - P27

뤼도 그건 네가 살면서 잃어버릴 첫 연도 마지막 연도 아니야. 나는 더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았다. 그 놀이가 열네 살 소년에게는 조금 유치한 것이 되긴 했지만 나는 성년이 되고서도 자기 안에 천진함을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의 본보기를 눈앞에 보고있었다. 이 천진함이 늙지 않으면 지혜가 된다. 내가 "나의 귀여운 폴란드 여자"라고 부르던 그 애를 보지 못한지 거의 4년이나 되었지만 내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그 애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가 아주 섬세했고, 움직일 때마다 조화로운 생동감이 느껴졌다. - P32

"한 가지 질문만 하겠는데, 단 한마디로 대답하세요. 우아함을 특징짓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폴란드 소녀를 생각했고, 그녀의 목을, 그녀의 팔을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떠올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움직임입니다."

난 19점을 받았다. 내 대학 입시는 사랑에 빚졌다. - P33

나는 눈을 들었다. 그녀가 와 있었다. 흘러간 4년의 세월이 내 기억에 경의를 바치듯 경건한 마음으로 보살펴온 소녀가 내 앞에와 있었다. 난 굳어버렸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출렁 뛰었고, 목이 메었다. 곧 흥분은 가라앉았고, 나는 조용히 책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조금 늦게 돌아온 것뿐이었다. - P34

-4년 전부터 나를 기다린 것 같네………
그녀가 웃었다.
-그리고 설탕도 잊지 않았네!
-난 절대 아무것도 잊지 않아.
-나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잊는데 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아 - P33

-우리 정원사들이 네가 찾아와서 내가 돌아올 건지 물었다고 말해줬어. 미친 사랑이야 뭐야?

스스로 변호하지 않으면 끝장이라는 걸 나는 알았다.
- 때로는 누군가를 잊는 최고의 방법이 그 사람을 다시 보는 거라는 것 알아?

-에이, 화내지 마. 농담하는 거야. 사람들 말이 사실이야? 너희 집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던데?

- 그렇다는 게 뭐야?

- 잊어버리지 않는다며?

- 앙브루아즈 삼촌은 플뢰리 집안사람들 몇몇은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죽었다고 주장해

-기억력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단 말이야? 바보 같아. - P35

나는 내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으며, 세상에는 학교가 내게 가르쳐준 것과 전혀 다른 무게중심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삶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발치에 그렇게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달아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오늘날 까지도 내가 달아나지 않아서 내 삶이 성공한 건지 아니면 남아 있어서 삶을 망친 건지 알지 못한다. - P48

난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병을 좋아하지 않아. 네가 이런 습관이 안 들면 좋겠어. 이따금 가벼운 감기 정도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안 돼. 네가 아니라도 아픈 사람은 충분히 많아. 죽는 사람도 있어. 사랑 때문이 아니라 끔찍한 더러운 것 때문에 말이야. 나는 사랑으로 죽는 건 이해해. 때때로 사랑은 너무 강력해서 생명이 버텨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니까 봐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책들을 네게 줄게. - P55

우리 다섯 모두 아직은 유년기의 천진함에 가까이 있었다. 아마도 삶이 우리에게 주었다가 다시 빼았는 가장 비옥한 몫일 천진난만함 말이다. - P82

선생님, 곧 닥칠 시대에는 아마도 보잘것없는 우체국 직원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장 멋진 역할일 겁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 P87

이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나는 삶이 모든 약속을 지킨다고 믿었고, 그걸 의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느꼈다. - P90

제대로 아프고 끝내는 편이 나아. 네가 그 애를 평생 사랑 하게 될지라도 그 애가 영원히 떠나는 편이 나아. 그러는 편이 그애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 - P104

겨울 동안 릴라는 내게 편지 몇 통을 썼다. 편지는 점점 짧아지더니 엽서가 되고 말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곧 우리는 만나게 될 테고, 그녀의 짧은 말들,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네가 드디어 폴란드를 알게 될 생각을 하니 정말 행복해." "우리 모두 너를 생각해." "6월이 오고 있어!" 등이 달과 주를 건너뛰며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내가 떠날 때까지 긴 침묵이 흘렀다. 마치 기다림의 마지막 몇 주를 더 단축하려는 것만 같았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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