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홀로코스트와는 다른 느낌이 작품이다.


"입맛이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의 손이 닿자 처음으로 뭔가가 내 목구멍을 확 막아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슬퍼서 울 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구토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아빠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나쁜 생각이었지만 다른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을 정도로 그 느낌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잠시 후 거의 울 뻔했지만 손님들이 와서 그럴 수도 없었다. - P21

예컨대 아저씨가 근심 걱정 없는 행복한 유년 시절이라고 명명한 내 인생의 특정한 시기가 오늘 이 슬픈 날로써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P26

아침에 가장 먼저 새엄마가 내게 한 요청 때문에 내가 어느 순간엔가는 무조건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유야 어떻든 눈물을 흘린 것은 결국 잘한 일이었다. 아빠가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 흡족해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빠가 가서 자라며 나를 들여보냈다. 나는 무척 피곤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최소한 그날 하루만큼은 불쌍한 아빠가 좋은 기억을 가진 채 노동 수용소로 떠나게 한 듯싶다. - P33

몇몇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여정의 종착지에 ‘숲 속 호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목이 마르거나 더울 때 이 이름의 뜻이 그 자체로 하나의 약속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쉽게 견뎌 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붙인 이름일 것이다 - P82

혹시 지역 이름이 쓰인 간판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첫 햇살이 들자 기차 진행 방향에 있는 건물의 좁은 측면 지붕 아래에 붙어 있는 간판 위 두 단어가 보였다. 나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라고 소리 내어 읽었다. - P86

각자 다 일을 해야 하고, 지친 것처럼 보여도 안 되고 병들어 보여도 안 돼. - P89

나는 그들이 전혀 위험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편하게 종대 앞쪽과 뒤쪽을 걸어 다니고 기둥을 따라 순찰했으며 질문에 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우리 중 몇몇 사람의 등이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 주기도 했다. - P94

"군인에게 있어 첫 번째 법칙은 오늘 주는 것을 다 먹으라 는 거야. 내일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지." - P116

아무리 촘촘한 감옥 벽도 상상의 날개를 제한하지는 못한다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있고 실제로도 체험했다. 유일한 문제라면 상상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현실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신속하고 적절하고 확실하게 내가 처해 있는 현실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 P171

아무리 강제 수용소에 있어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사람을 깨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 P171

"우선 그 끔찍했던 일들을 다 잊어야 한다."

내가 좀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야 하죠?"

그가 대답했다.
"그래야 네가 살아갈 수 있거든."

플레이슈먼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야."

이번에는 슈테이네르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역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런 짐을 지고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단다." - P277

그래서 과거에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인데 내 기억에 대고 명령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새로운 삶이란 내가 다시 태어나거나 정신이 손상을 입거나 병에 걸리거나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 P278

나는 항상 이전의 삶을 이어 갈 뿐 결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는 없다. 나는 다른 길이 아닌 주어진 나의 운명 속에서 끝까지 정직하게 걸어왔다고 주장했다 - P281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 P282

나는 틀림없이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극복하지 못할 불가능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 P284

사람들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이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잊지 않는다면 말이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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