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문학 입문서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정치지도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섣불리 전쟁하지 못할텐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죄다 잃어버렸다. 쫓기는 우리의 시선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누가 누군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제 감정이 없는 죽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속임수와 위험한 마술을 써서 달리고 또 달리며 그저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 P127
예전의 영상이 소망보다는 오히려 슬픔, 즉 무시무시하고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적 때문이다. 이러한 영상은 과거에 존재했지만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추억은 지나가 버렸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지나가 버린 다른 세계이다. - P132
그냥 엎드리고 있으면 공포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곰곰 생각하다가는 공포에 질려 죽고 만다. - P150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간들이다. 나로서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경멸스럽기도 하다. 나는 카친스키며 알베르트며 뮐러며 차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아마 술집에 죽치고 있거나 수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전선에 나가야 할 텐데. - P181
아, 어머니, 어머니! 전 어머니에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왜 저는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 수 없나요? 왜저는 늘 씩씩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저도 한 번쯤 울면서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요. 장롱에는 아직 내가 어릴 때 입던 짧은 바지가 걸려 있다. 그때가 마치 어제와 같은데, 왜 그 시절이 이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는가? - P195
사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느닷없이 전쟁이 터지는 거야. 우린 전쟁을 바라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주장하지. 그런데도 세계의 절반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어. - P217
그의 군복은 아직 반쯤 열려 있다. 지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갑을 여는 일을 주저한다. 지갑에는 이름이 적힌 군인 수첩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한 어쩌면 그를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내 가슴에 단단히 박혀 결코 빠져나가지 않을 못인 셈이다. 이름은 모든 것을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들일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이름은 언제라도 다시 나타나 내 눈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 P235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 P304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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