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쉬운 작품은 아닌데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공감이 된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 P9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가 오기를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 가능하다면 나는 그 일을 했던 것이고 사실 오늘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이 내게는 본성이 되었고, 기다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도 이미 오래전부터 괴롭지 않다. - P12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그것이 대답이었고, 그 문장을 마침내 말로 꺼내 얘기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나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 P20
나는 청춘의 사랑이 없었어. 어쨌든 행복한 사랑은 없었어.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도 내가 좋아하지 않았지. 결함이거나 아니면 오만이었겠지. 행복은 닿을 수 없는 것이었어. 닿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거짓 행복이었을 거야. - P47
전쟁이 없다면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이 그저 인간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용기와 기사의 충성심같이 남자들의 것으로 간주되는 일정한 특성들이 오직 전쟁을 통해 규정되고 미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남자들을 말살시킴으로써 그들을 그렇게 소중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P59
프란츠의 손가락 끝 사이에서 포도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프란츠가 우리를, 자기와 나를, 꿈이라고 여기고 있는지 현실로서 참아내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꿈이라면 조만간에 어쩔 수 없이 깨어나야 하는 것이고, 그에게 우리가 현실이 라면 우리가 너무도 아름다운 존재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 P96
내게 오기 위해 거짓말이 필요했다는 것, 그리고 거짓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힘들지만 견뎌냈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 솜씨에 감탄하면서 프란츠가 그 작은 금발 여자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내게요구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 P1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