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강은 사강이다. 평펌한건 그녀가 아니다.

그건 포플러 나무였어, 나는 여덟 살이었고 자신이 왜 추억 속에서 더 어려지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시간상으로 멀어지면 앨런의 질투심이 몇 단계 줄어드는 느낌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 앨렌도 여덟 살의 그녀에게 ‘넌 누구를 사랑해?‘라고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아득한 과거는 추억일 뿐이다.) - P10
"당신은 왜 나랑 결혼했어?" 앨런이 물었다.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지금은?"
"지금도 사랑하지."
"무엇 때문에?"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 세 가지 질문은 극장에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종소리와 같았다. 스스로 고통을 느끼기 전에 암암리에 관찰되는 일종의 관습 말이다. - P11
조제는 앨런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앨런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이지 서부의 젊은 영웅처럼 보였다. 맑은 눈,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 솔직한 표정, 뚜렷이 드러나는 순박함도. 그렇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며 얼마간 더 사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사랑의 종말) - P12
앨런이 인생에 실패한 남자의 멋진 발걸음으로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가 멀어져갈 때마다 그녀는 일종의 슬픔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난 이제 그를 사랑하지 않아."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태양이 그녀에게 반박이라도 할 것 같아 한쪽 팔을 격하게 얼굴 앞에 갖다 댔다. - P15
앨런은 브랜든 이야기만 했다. 그의 눈엔 키넬 부부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앨런이 시작한 새로운 게임이었다. 그는 커다란 열정을 마주한 무능한 관객 역할을 했고, 이브를 나의 불운하고 가여운 동료‘라고 불렀다. - P28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친 애착을 갖고 있었다. 실수해도 무조건 견디고 보는 태도에 지나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악몽은 끝났다. - P62
"조제, 난 널 알아. 넌 혼자 있고 싶었을 거고 시골이 좋았을 거야. 그래서 시골에 집을 빌리고 싶었을 테고, 너는 매사에 단순하게 행동하니까 업종별 전화번호부를 펼쳐 부동산 중개사무소 전화번호를 찾았겠지. 검은색 테두리로 강조된 첫 번째 중개사무소를 골랐을 거고, 그런 다음 한 달 동안 머물 시골집을 구해달라고 부탁했겠지. 너를 찾으려고 나도 똑같이 했어. 그런데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 중개사무소였어. 이유가 뭐야?"
(이유가 뭘까?) - P85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랑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손안에 든 먹이를 조금씩 갉아먹었을 뿐이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 - P103
"우리 사이에 진실한 뭔가가 있어, 안 그래?" - P103
그는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켰다. 그가 그녀를 지나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자기 뒤로,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기증 속으로 제쳐놓아서였다. 그가 그녀만을 보기 때문에 그녀도 그를, 오직 그만을 보아야 했다. 그녀는 지쳐서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랑) - P105
사실 앨런의 입장은 이랬다. ‘내가 당신의 삶 전체를 공유해야 한다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야 해.‘ 그리고 조제의 입장은 이랬다. ‘당신이 내 삶 전체는 아니라는 걸 당신은 받아들여야 해.‘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 식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우린 자유로워. 우린 세상에 섞여 있어. 우린 둘이서 세상에 섞이려고 애쓰고 있어.‘ - P112
"간단히 말해서, 난 우리가 괴짜라고 생각하지 않아. 뭐 활기 넘치고 감수성 풍부한 짐승들이긴 하겠지." - P117
갑자기 뉴욕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났다. 정오에 출발해 여섯 시간 뒤 파리에 도착하니 자정이었다. 30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눈부신 아침 해가 아래로 떨어지고, 붉어지고, 사라지는 모습을, 그러는 동안 밤의 그림자들이 비행기를 향해 돌진해오고, 둥근 창문들 밑으로 파란색과 연보라색 그리고 검은색 구름들이 열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단숨에 다시 밤이 되었다. 그때 그녀는 그 구름들의 바다에, 공기·물·바람의 혼합물에 잠기고 싶은 신기한 욕구를 느꼈다.
(신기한 구름) - P152
"그럴 만도 하지. 넌 어떤 사건이나 악행 때문에 피곤해질 때 인적 없는 해변을 꿈꾸잖아. 그거 기억나니?" - P158
"상황이 변했어. 이제 난 그때만큼 웃지 않아, 게다가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사람들을 잊으려고 술을 마셔. 웃기지, 안그래?" - P183
"넌 모든 걸, 나의 흥미를 끄는 모든 걸 말한 것 같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걸."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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