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인줄은 알겠는데 책이 쉽지만은 않다.


그녀는 이렇게 어느 날 장마르크를 잃는다는 상상을 했다. 오직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에 빠지는 것. 그녀는 아마 자살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살은 배신일 것이며 기다림의 거부, 인내의 상실일 것이다. 그녀는 숨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만 할것이다. - P9

과거, 미래, 아니면 이 세상 무엇을 준다 해도 현재와는 맞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꿈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꿈은 한 인생의 각기 다른 시절에 대한 수용하지 못할 평등성과, 인간이 겪은 모든 것을 평준화하는 동시대성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꿈은 현재의 특권적 지위를 부정하며 현재를 무시한다. 마치 지난밤 그녀의 꿈에서처럼. - P11

남자들이 결코 더 이상 나에게는 한눈을 팔지 않는 그런 세계에서 살고있다. - P19

권태에는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수동적 권태, 춤을 추고 하품하는 소녀. 적극적 권태, 연 애호가. 반항적 권태, 자동차에 불 지르고 창유리를 깨는 젊은이들. - P22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들이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아서 슬프다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난 뭐야? 난 말이야? 당신을 찾아 해변을 수킬로미터씩 헤맸고, 울면서 당신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고, 당신을 따라 지구 끝까지라도 뛰어갈 수 있는 나는 뭐지? - P29

"그래, 나는 두 얼굴을 가질 수 있어. 하지만 한꺼번에 두 얼굴을 할 수는 없지. 당신 앞에서는 내 일에 대해 비웃는 얼굴을 하지. 사무실에서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 P35

그녀를 사랑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리 해주어도 소용없고 사랑에 가득한 시선도 그녀에겐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시선은 외톨이로 만드는 시선이기 때문이다. 장마르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투명하게 변한 두 늙은이의 사랑스러운 고독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을 예고하는 슬픈 고독이다.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시선이 아니라 천박하고 음탕한 익명의 시선, 호감이나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랑도 예의도 없이 필연적으로, 숙명적으로 그녀 육체로 쏟아지는 시선이다. 이런 시선들이 그녀를 인간 사회에 머무르게 하고 사랑의 시선은 그녀를 사회로부터 유리한다. - P45

"오늘 아침 우편함에 있더군. F가 죽었어."

"아무튼 충격 받았겠네."

"아니, 충격 받지 않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 - P53

내가 감히 이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암울한 생각이 너에게 어떤 저주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네가 나를 떠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깨달았단다. 너의 죽음이 하나의 선물, 내가 결국 받아들이고 만 끔찍한 선물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 P69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사랑하는 두 존재, 그건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이 아무리 경멸할 만한 것일지라도 그들에겐 이 세계가 필요해, 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 P92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 - P99

깊은 생각에 잠겨 그는 왜 그녀가 편지를 보여 주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자문해 보았다. 해답은 간단해 보였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것은 훗날 그녀에게 접근하여 유혹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이 편지를 비밀로 간직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조심성이 내일의 모험을 보호해 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편지를 간직한다면 그것은 그녀가 이 미래의 모험을 사랑으로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P109

그녀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 그리고 말을 멈춘 뒤 "내 눈이 깜박거리면 두려워, 내 시선이 꺼진 그 순간 당신 대신 뱀, 쥐, 다른 어떤 남자가 끼어들까하는 두려움." 하고 이었다. 그는 몸을 조금 일으켜 입술을 그녀에게 대려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그러더니 다시 말했다.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야. 매일 밤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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