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구나,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비행기편으로 섬으로 들어왔고, 인선의 마을로 데려다줄 마지막 지선버스에 방금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들었던 연인들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게 운좋은 거냐. 날씨가 이래가지고, 이 좋은 운을 타고 어떤 위험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건가? - P120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P138
부드러운 것이 손끝에 닿는다. 더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 P149
제목이 뭐야?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 P191
이야기의 패턴은 거의 같았다. 큰 산 아랫마을의 모든 대문을 두드려 끼니를 청했으나 거절당한 늙은 걸인이 오직 한 여자에게서 밥 한 그릇을 얻는다. 고마움의 표시로 그가 말한다. 내일 동트기 전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산을 오르라고, 산을 넘어갈 때까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고, 노인의 말대로 여자가 산중턱에 다다랐을 때 해일이나 폭우가 마을을 삼킨다. 예외 없이 그녀는 뒤돌아본다. 그곳에서 돌이 된다. - P239
돌아가자, 나는 말했다. 다음에 오자, 눈 그치고 다시.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인선이 말했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 P307
이상하지. 엄마가 사라지면 마침내 내 삶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갈 다리가 끊어지고 없었어. 더이상 내 방으로 기어오는 엄마가 없는데 잠을 잘 수 없었어. 더이상 죽어서 벗어날 필요가 없는데 계속해서 죽고 싶었어. - P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