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혼란이 온다. 근엄해보이는 사람도 약점이 드러나게 되면 결국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내 앞에 있을 때만이라도 간살부리는 말을 하면 그걸로 된 거지, 뒤에서 뭐라고하건 나한텐 들리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하고 대답했다. - P50
"그 여자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겠어. 죽으면 이제 만날 기회도 없겠지. 만약 낫는다고 해도 역시 만날 기회는 없을 거야. 묘한 일 아닌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라고 하면 과장이 되겠지만 말이네.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실제로 만남과 헤어짐의 느낌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 여자는 오늘 밤 내가 도쿄로 돌아가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안녕히 가시라고 하더군. 나는 오늘 밤 기차에서 어쩐지 그 쓸쓸한 웃음을 꿈에 볼 것 같네." - P85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기 자식의 아집을 눈감아주고 오냐오냐 키워온 결과 지금은 무슨 일이나 그 아집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 처지였다. - P105
"사람은 보통 세상에 대한 체면이라든가 도리 때문에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이 많을 거야." "그야 많겠지요." "하지만 정신병에 걸리면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모든 정신병을 포함해서 말하는 것 같아 의사들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신병에 걸리면 마음이 무척 편해지는 게 아니겠어?" - P118
"그야 저애 일이니까 뭐라고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부부가 된 이상은 아무리 남편이 인정머리 없게 군다고 해도 자기는 여자 아니냐? 남편 기분이 좋아지도록 나오가 좀 어떻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이야. 저것 좀 봐라. 저래서는 꼭 생판 남들끼리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잖니. 아무리 이치로라도 옆으로 다가오지 말라고 대놓고 부탁하지는 않았을 거고." - P121
"형수님한테 무슨 일 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형에게 되물었다. "나오는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형의 말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또한 평소 형이 지니고 있는 품격 에도 맞지 않았다. "어째서요?" "어째서냐고 물으면 곤란하지." - P133
"책을 연구한다거나 심리학적인 설명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번거로운 연구를 말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내 눈앞에 있고 가장 가까워야 한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지 않고서는 안절부절못할 만큼의 필요성에 맞닥뜨린 적이 있느냐고 묻는 거야." - P133
"어떤 서간에서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어. 나는 여자의 용모에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여자의 몸에 만족하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영혼, 이른바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무리 해도 내게는 연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 P138
"형님한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척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님은 저보다 뛰어난 학자니까 물론 그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형제라고 해도 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 P139
나는 잠시 형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관여하기 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불끈 화를 내고 있다.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 일부러 초조함을 억누르려고 하고 있다. 전혀 여유가 없을 만큼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고무풍선처럼 가볍게 긴장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자신의 힘으로 파열하든가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어딘가로 날아갈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렇게 관찰했다. - P191
나는 그제야 형에게 형수가 힘에 겨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또한 형수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방식이 가장 교묘한 걸 거라고도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오로지 형의 정면만을 보고 너무 조심하거나 어렵게 여기고 때에 따라서는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 하루 밤낮을 형수와 보낸 경험은 뜻밖에도 대단히 불쾌한 이 형을 뒤에서 만만하게 보는 결과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형수로부터 형을 이렇게 보라고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형 앞에서 이만큼 배짱을 부려본 적도 없다. 부채를 바라보고 있는 형의 얼굴 언저리를 나도 비교적 시치미를 떼고 바라 보았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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