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읽기 끝. 그들의 행동이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기에 더 비극적인 것 같다. 그들의 비극은 자신들의 탓일까? 사회의 탓일까?

그녀를 응시하던 구제는 떨리는 입술로 불쑥 말했다. "어제 당신은 날 아프게 했어요. 오! 그래요. 많이 아프게요." 그러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제르베즈는 두 손을 한데 모았다. 대장장이는 말을 이었다. "그래요,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내게 미리 얘기해줬어야 해요. 내가 허황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두사람의 관계를 솔직하게." - P39
두 사람은 서로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멀리 높게 솟은 공장 굴뚝숲 사이로 보이는 희끄무레한 몽마르트르 언덕을 응시했다. 새하얀 석고처럼 보이는 황량한 교외의 음침한 선술집들 주위로 우거진 수풀이 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차라리 둘이 이루어졌더라면, 둘이 도망쳤더라면 다른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 P40
"할 말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지금 행복하지 않아요. 어머님도 그러셨어요, 당신이 사는 게 위태로워 보인다고." - P41
당신은 그동안 내게 여러 차례 힘이 되어주었고요. 우리가 각자 분수를 지키면서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충분히 보상받을 거라고 믿어요. - P42
제르베즈는 몸을 떨면서 점차 통제력을 잃어갔다. 랑티에가 그녀를 자기 방으로 밀어 넣는 동안, 작은방에 난 사각의 유리창 뒤로 나나의 얼굴이 보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아이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슈미즈 바람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잠이 가득한 해말간 얼굴로 토사물 속에서 잠든 아비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얼굴을 유리창에 바짝 붙인 채 꼼짝하지 않고, 속옷 바람인 어미가 맞은편 다른 남자의 방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아이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사악한 기가 가득한 커다란 눈은 관능적인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전 남편과 현 남편이 같이 산다는게 정상적인 일인가?) - P69
오직 그 누구도 골치 아픈 일을 겪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모두에게 좋은 게 좋은 게 아니겠는가? 남편과 연인이 다 같이 만족하고, 집안이 평소처럼 돌아간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닌가. 모두가 기름이 도는 얼굴로 삶에 만족하며 물 흐르듯 살아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웃고 떠들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점점 현실에 안주해 가는 제르비즈의 모습이 많이 안타깝다.) - P75
사방이 똥물로 가득 차 주위의 집들에까지 독소를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다, 그랬던 것이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서로가 한데 뒤엉켜 살아가는 이 파리 한구석에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 나왔다! 그러한 남녀를 맷돌에 간다면 아마도 생드니 들판에 있는 체리나무들에 비료로 주고도 남을 터였다. - P77
제르베즈는 우물가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쿠포는 그녀를 주먹으로 쳐서 우물 안으로 밀어 떨어뜨린 반면, 랑티에는 그녀가 빨리 뛰어내리도록 허리를 간질였다. 그랬다! 그 꿈은 그녀의 삶과 똑 닮아 있었다. 아! 그녀는 아주 된통 걸린 셈이었다. 앞으로 쪽박을 차게 된다고 해도 놀랄 게 없었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제르베즈의 불행은 그녀 탓이 아니었다.
(불행하면서도 웃긴건 왜일까? 남자들의 성격이 딱 맞았다.) - P95
그렇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일단 죽 으면 짐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결국 문제는 가난이었다. 가난.) - P119
"우린 아직 좋은 친구죠, 그렇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럼요, 물론이죠, 우린 언제나 좋은 친구죠... 다만, 분명히 말하지만, 이젠 모든 게 끝났습니다."
(이때라도 다시 해봤더라면...참 아쉽다...마음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게 아닌데) - P128
제르베즈를 무엇보다 우울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시각에 온 동네가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진창 속에 빠져 있을 때는 머리 위를 환하게 비추는 햇살이 달갑지 않은 법이다.
(불행한 사람만 점점 더 불행해지는 사회) - P240
그랬다, 빈곤한 노동자 들끼리 아래위로 겹겹이 살아가는 초라한 공동주택에서의 삶은 불행하게 끝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콜레라와 같은 가난에 전염되고 마는 것이다. - P309
"제발 날 좀 데려가주세요. 더는 못 하겠어요. 이대로 가버리고 싶다고요. 날 원망하면 안 돼요. 그땐 잘 몰라서 그랬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됐을 때는 잘 모르잖아요. 그래요! 영감님 말이 맞아요, 언젠가는 죽는 걸 다행으로 여길 때가 있을 거라는 말요! 그러니까 날 좀 데려가주세요, 데려가달라고요. 그럼 그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을게요!" - P310
"누구나 언젠가는 그곳으로 가게 마련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단 말이지. 그곳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 좀 늦게 간다고 조급해할 필욘 없다고. 나야 모두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나를 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어디보자, 그러니까 이 고객은… 오, 처음엔 싫다고 진저리를 치다가 나중엔 빨리 데려가달라고 사정했던 바로 그 아낙이구먼, 그래서 내가 좀 더 기다리라고 했지... 어쨌거나 결국 이렇게 됐군, 자기가 바라던 대로 됐어! 그러니까 기분 좋게 가자고!" - P339
"이보게 내 말 들리지..… 날세, 비비라게테, 여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는 남자…… 잘 가게, 거기선 여기서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이제 편히 잠들라고, 어여쁜 부인!"
(그곳에서는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 P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