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세키의 전기(연애) 3부작 읽기 끝.
초반의 잔잔함과 다르게 후반의 떨림은 강하다. 그런데도 고요한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는 신기한 작품.

"어떡해요" 하며 흐느껴 울었다. 소스케는 두 번째 충격을 남자답게 받아들였다. 차가운 몸뚱이가 재가 되고 그 재가 다시 검은 흙이 될 때까지 푸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던 그림자 같은 것도 점차 멀어졌고 머지않아 거의 사라져버렸다. - P169
"당신은 아이 못 가져"
"그건 왜죠?"
"당신은 남한테 몹쓸 짓을 한 적이 있어. 그 죄 때문에 벌을 받아서 아기는 절대 못 키워" - P176
소스케는 아주 짧았던 그때의 대화를 일일이 떠올릴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거의 무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담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두 사람의 미래를 새빨갛게 뒤덮었는지를 신기하게 여겼다. 지금은 그 붉은색도 세월이 흘러 옛날의 선명함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태운 불꽃은 자연스럽게 변색되어 까매졌다. 두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 P186
소스케는 과거를 돌아보며 일의 경과를 거꾸로 되돌아보고는 그 담백한 대화가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짙게 채색했는지 가슴속으로 철저하게 음미하면 서 평범한 사건을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 P187
소스케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멈추고 자신도 오요네도 순식간에 화석이 되어버렸다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순간에 멈추었더라면...) - P201
그들은 잔혹한 운명이 변덕을 부려 죄도 없는 두 사람을 급습하여 장난 삼아 함정에 빠뜨린 것을 원통해했다. - P202
소스케와 오요네의 일생을 어둡게 채색한 관계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흐릿하게 해 자신들이 어딘가 유령 같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그들은 마음속 어느 부분에 남에게 보이지 않는 무서운 결핵성 균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는 얼굴로 서로를 대해왔다. - P223
고로쿠로부터 사카이의 동생, 그리고 만주, 몽골, 귀경, 야스이, 이런 대화의 흔적을 더듬어가면 갈수록 우연의 정도가 너무 심한 것 같았다. 그가 과거의 통한을 새롭게 하려고 보통 사람이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이런 우연을 맞닥뜨리게 하기 위해 수백, 수천 명의 사람 중에서 골라내야 할 정도의 인물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니 소스케는 괴로웠다. 또한 화가 났다.
(운명의 장난이란...) - P227
오늘까지의 경과로 미루어보아 모든 상처를 아 물게 하는 것은 세월이라는 격언을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이끌어내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것이 그제 밤에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다. - P234
들어가기 쉬워도 나중에 막혀서 꼼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오래 걸려도 마지막에는 굉장히 통쾌하게 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 P272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 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날 수 없는 문이라면 일부러 거기까지 가는 것은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저히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견고한 문이 언제까지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문을 지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문을 지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아래에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해가 지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 P277
"정말 다행이에요. 드디어 봄이 돼서" 하며 눈썹을 환하게 폈다. 소스케는 툇마루로 나가 길게 자란 손톱을 자르면서, "응, 하지만 또 금방 겨울이 오겠지"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인 채 가위를 움직였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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