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단편집. 마담 보바리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책을 읽은 느낌은 왠지 오스카 와일드 단편을 읽는 느낌을 받았다.

<순박한 마음>
작은 판자에 받쳐진 룰루는 방 가운데까지 튀어나온 벽난로 위에 놓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 그녀는 여명의 빛 속에서 그 새를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지나간 날들이며 부질없던 일들을 자잘한 데까지, 아무런 고통도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 P52
<순박한 마음>
무엇보다 그녀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자신의 방을 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불쌍한 룰루에게 그토록 안락한 그곳을! 불안하고 두려운 시선으로 새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그녀는 성령에게 간절히 기도했고, 그러다가 앵무새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우상숭배의 습관이 생기고 말았다. 때때로 지붕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앵무새의 유리 눈알에 닿아 눈부시게 반짝이면 그녀는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 P55
<순박한 마음>
푸른빛 향연이 펠리시테의 방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코를 벌름거리며 신비로운 쾌락에 휩싸인채 향내음을 맡은 후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샘이 말라 없어져가듯, 메아리가사라지듯, 심장박동이 차츰차츰 약해지다 아주 잦아들었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그녀는 반쯤 열린 하늘에서 그녀의 머리 위를 활공하는, 거대한 앵무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 - P60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기뻐하소서, 어머니여! 그대의 아들은 앞으로 성인이 될 것이오!" 그녀가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노인은 달빛에 미끄러지듯 홀연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잔치의 노랫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천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누이자, 찬란히 빛나는 석류석 함에 담긴 순교자의 유골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P66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아! 아! 그대의 아들은!.많은 피!.무한한 영광!.영원한 행복! 황제의 가문!" 그러더니 몸을 굽혀 영주가 적선한 돈을 줍고는 숲속으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영주는 사방을 둘러보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쳐 불렀으나 아무도 없었다! 들리는 건 오직 바람 소리뿐.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 P67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거대한 수놈은 화살 맞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죽은 사슴들을 뛰어넘더니 앞으로 달려와 쥘리앵을 뿔로 받으려 했다. 질리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공포에 사로잡혀 뒤로 물러섰다. 그 기이한 동물은 멈춰 서서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멀리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는 동안, 족장이나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세 번 소리쳤다. "저주받을지어다! 저주받을지어다! 저주받을지어다! 극악무도한 놈아. 언젠가 너는 네 아비와 어미를 죽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P77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눈앞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자빠져 있었다. 위엄 있으면서도 온화한 두 얼굴은 영원한 비밀을 간직한 듯했다. 그들의 흰 살갖뿐만 아니라 침대 시트, 바닥, 알코브*에 걸린, 상아로 만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까지 피가 튀고 고여 있었다. - P92
<구호수도사 성 쥘리앵의 전설>
그러자 문둥이는 그를 껴안았다. 그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머리카락은 태양의 빛줄기처럼 길게 뻗쳤다. 그의 코에서 새어나오는 숨결에서 장미꽃 내음이 풍겼고, 화로에서는 향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으며, 물결은 찬양하듯 노래했다. 그러는 동안, 아득해져가는 쥘리앵의 영혼속으로 넘치는 환희와 상상도 할 수 없을 희열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두 팔로 쥘리앵을 껴안은 사나이의 머리와 발이 오두막의 양쪽 벽에 닿을 만큼 점점 커졌다.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맑고 푸른 하늘이 활짝 펼쳐졌다. 자기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예수그리스도를 마주보며, 쥘리앵은 푸른 하늘로 올라갔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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