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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예"는 남은시간,미뤄진 시간이라는 뜻으로,이 글에서는 죽음을 앞둔 남겨진 (1)시간을 뜻한다. 

   이 글은 6.25전쟁중 본대와의 연락이 끊긴 부대의 부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상황을 적어놓은 글이다.대부분의 부하들은 전투중 죽거나 추위로 인해 얼어죽고,그 부대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5섯명의 부하,총 6명만이 남았다.xx지점에 도착했을때 선임하사가 죽고,결국은 혼자남는다.어느 텅 빈 마을에서 한 사람이 인민군에의해 총살당하기직전의 상황을 목격하고,인민군을 향해 총을 쏘았으나 곧 잡힌다.그 후 1시간이 지나고 총살을 당한다. 

   내가 총살당할 그 사람이었다면 그냥 총을 버리거나 숨기고 총을 쏘지 않았을것이다.그 사람이 총을 쏜것으로 봐서,그 사람은 용기가 많았거나 무의식중에 쏜것같다.그리고 내가 죽기전한시간상황이었다면 나는 탈출하거나 매우 불안해했을건데 그 사람은 그냥 죽으러 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그사람에게 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무섭고 죽기 싫었을 건데 그냥 담담히 죽으러 가는 것을 볼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그리고 인민군을 쏠때와 쏘고난 후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물어보고싶다. 

   이 글을 읽었을 때,그 사람은 아마도 전쟁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죽음은 허무하고 무의미한,즉 죽어도 유명인사가 아니면 전쟁중에 죽는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었을지모 모른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직접 전쟁중에 있지는 않지만 전쟁의 비극성등을 더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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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白頭大幹)운 백두산병사봉(장군봉)에서 시작해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1400Km의 크고 긴 산줄기를 말한다.백두산과 지리산의 사이에 북쪽의 2000m급고봉들과 금강산,설악산,태백산,설악산,태백산,속리산,덕유산을 품고 있다.

  10대 강 물줄기의 발원지이며,한반도의 명산들이 대부분 자리잡고 있다.남한의 경우 6개의 도와 32개의시,군에 걸쳐있다.

  태백산맥,소백산맥 등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으로,그 전까지는 '산맥'이란 개념이 없었다.우리 선조들의 국토 이해 방식은 산맥이 아니라 대간(大幹),(正幹),정맥이었다.

  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산자분수령'이란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산이 곧 물을 나눈다'는 의미이다.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전통적 지리인식의 바탕에 자리잡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이중환의 <택리지>등이 모두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조선후기 여암 신경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經表)>를 통해 개념을 완성시켰다.

  그러나 백두대간의 개념은 일제침략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잊혀져 왔는데,1980년 겨울,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가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 영조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이 쓴 <산경표>를 발견하면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산경표>에서는 우리나라의 큰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구분하여 정리하보 있는데,이중에서 근간이자 기둥이 되는 가장 커다란 산줄기가 바로 백두대간이다.(최근 규장각에서 진본이 발견되 1대간,2정간(장백정간,낙남정간),12정맥이 정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신경준은 백두대간을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이어진 대간산맥*하나의 단절이 없는 대분수령*한반도남북을 달리는 대산맥축 으로 정리했다.

  또 88년 대학산악연맹 소속 대학생 49명은 60일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연맹 연회보에 소개하면서 전국 산악인들 사이에서 백두대간 종주붐이 일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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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뛰는 사진)

이 아이들은 한가족이며,바닷가로놀러왔다.각각 6학년, 4학년,1학년,7살이며 바닷물에 들어갔다가 엄마.아빠가 밥먹는다고 해서 엄마에게로 가고 있다.모래성쌓기를 하다가 바닷물에 모래성이 쓸려가서 물놀이를 하다가 밥을먹으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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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4월3일,제주도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등의탄압을 당하던 제주도도민중 위 사람들에게 봉기를 든것이 제주4.3사건이다.이 사건은 8.15광복이후 계속돼던 좌.우익간 정치적갈등에서 비롯돼었다.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세력들이 정치적주도권을 잡고 있던 제주도에 미군정의 지지를 받은 우익세력이 강화돼면서 이들사이의 정치적갈등은 점차 심화되었다.이갈등은 1947년3.1운동기념집회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도민6명이 사망하면서 본격화 돼었고,결국4.3사태로 표면화 돼었다.사태가 악화돼자,미군정은 군대를 투입했다.진압과정에서 약28만명의 도민들중 거의10%인 3만여명이 사망하고,1년후인 1949년봄에 사태가 종결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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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는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을 갈 때마다 목걸이나 브로치를 사는,한마디로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어보면,아키라가 왜 목걸이와 브로치를 샀는지 알 수 있다.아키라는 구미라는 옆집에 사는 뇌성마비에 걸려서 혼자서는 아무겄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사다줄려고 샀던 것이다.그런데 몇몄아이들은 아키라가 여자옷을 입고,목걸이를 메고 있는,즉 조금 야한생각을 하며 아키라를 놀려댔다.나는 이 이야기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아키라를 놀리는 애들을 아키라와 마찬가지로 헛소문을 퍼뜨려서 그 아이들을 놀릴 것이다.왜냐하면 아키라도 옆집아이를 주려고 목걸이나 브로치를 샀는데 자기가 쓴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는 아이때문에 속이 상했을 것 같기 때문에 헛소문을 퍼뜨린 애들도 당해보라고 퍼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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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2013-07-19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 감사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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