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 인권변호사 우리시대의 인물이야기 6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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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래는 1947년에 태어 났으며,3남 4녀중 맏아들이었다.1960년 13살때 3.15 부정선거가 발생하고 같은 해 4월에 4.19 혁명이 발생했으며 1970년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전태일분신사건이 일어나서 친구인 장기표등과 전태일 장례식을 맏기도 했다.그런데 1년뒤 서울대생 내란 음모사건으로 구속되고,1년 6개월 후 감옥에서 나왔으나 다시 1년후 민청학련사건으로 수배되서 도망치는 신세가 됬고,이 후 6년동안 숨어서 도망다녀야 했을 정도로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야 했다.그러나 망원동 수재 사건,대우 어패럴 사건,부천서 성고문 사건,상봉동 진폐증 환자 사건등의 사건에서 연달아 승소함에 따라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음에도 억울한 누명을 가지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공짜로 돈을 안받고 변호를 해주었다.그리고 매우 유명해 져서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인권 문제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몇달동안 미국에 갔다가 왔으나 폐암3기진단을 받아 43세였던 1990년에 사망하셨다. 

   나는 조영래가 간이 참 크다고 생각된다.왜냐하면 민청학련사건으로 도망다니면서도 전태일평전의 기본이 될 책을 쓰고,돈벌 생각보다 다른사람들을 변호 할 생각부터 먼저 해서 돈은 한푼도 안받고 변호해 주었으며 사법시험준비도 바쁜데 전태일장례식을 맏았기 때문이다.그래도 본받을 점은 많다.변호사는 의사,CEO에 버금가는 엄청난 수입을 가지는 직업인데도 자신의 돈보다 다른 사람의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무료로 변호를 해주며 지조가 대쪽처럼 곧아서 돈 몇푼에 원수국가와 친하게 지낸다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도 했었다.나도 그것은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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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2009-06-1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하야, 열심히 책을 잘 읽고 , 의젓하게 글을 잘 쓰는 네가 새삼 많이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나. 장하다 , 우리 아들, 읽은 책 만큼 너의 생각도 훌쩍 커간다는게 느껴진단다.

사랑한다. 우리 맏아들.

임소정 2011-10-2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나보다 잘쓴다... 몇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