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서보경 지음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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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가 쓴 우리나라의 HIV에 대한 책이라길래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HIV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보다는 그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그로 인해 (의학적이든 사회적이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라는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역시나 이 책에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자는 역사 깊이 뿌리내린 낙인, 혐오, 잘못된 편견 등으로 인해 정치 사회적으로 ‘휘말리는’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HIV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고, HIV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풀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HIV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톺아보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사실들을 짚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보균자’ 발견 중심의 정책은 에이즈를 질병과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검거와 발각이라는 범죄의 언어를 통해 말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127p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 과거 우리나라의 HIV 대응 방식은 ‘강제 검진 제도’와 ‘일방적 통보 방식’이었고, 이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낭비가 발생하였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그렇게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사회적인 ‘추락’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부터 HIV를 둘러싼 온갖 억측과 집단적 공황이 배양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흔하게들 알고 있던 HIV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한번 짚어보자. 혹시 우리들 중 HIV와 에이즈를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HIV와 에이즈를 구분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HIV’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며 걸리는 무수히 많은 질병 중 하나가 바로 ‘에이즈’인 것이다.

또 한가지 꼭 일러두고 싶은 점이 있는데, 바로 HIV에 걸렸다고 해서 무조건 에이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HIV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항바이러스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HIV의 만성질환화라고 부른다. 이 말인 즉슨, HIV 감염이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전파가 되지 않는 것이 밝혀졌고, 지속적인 약물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하게된 점이 똑같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학의 발전이 아닌 사람들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평소에 관심 있게 보던 주제였다거나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느끼는 주제는 아니였던지라 가독성 좋게 술술 넘어가는 그런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고, 의미있다. 살면서 한번쯤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HIV는 내 삶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고혈압과 당뇨처럼 HIV 바이러스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우리는 그저 앞줄에서 먼저 바이러스를 만난 것 뿐입니다. 그래서 뒷줄에 서 계신 당신들께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느끼는 것들을 말이지요.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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