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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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모래로 지은 집’, 120쪽)

🗣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같은 작품,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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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아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겠지…) 나와는 다르기에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즐거운 적도 물론 있었다. 나에게 없는 면모를 상대가 채워주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내가 도움을 주기도 하고, 흔히들 말하는 ‘티키타카’가 맞는달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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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는가 하면, 무작정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한 방식이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고, 정신적으로도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이 정말 힘든 감정 노동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싫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판단하고 계속 노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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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은, 어쩌면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이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 바람이 행여라도 꺾이게 되면 나 혼자서 또다시 실망하고 속상하고 분노했다. 이런 마음은 사실 이 작품이 말하는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이었던 걸까? 차라리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들은 그들로서 그대로 두기만 하면 될 것을, 구태여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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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게 되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성찰하는 , 이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이유인 같다.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생각하고 노력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쓰인소설 읽는다. 글은 작품집에 수록된 <모래로 지은 > 읽으며 떠오른 생각들을 적은 것이다. 작품을 읽은 지금도 나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옳기만 하다는 과거의 편협함에서는 벗어난 같다. 앞으로 사회를 더 경험하고 사람들을 상대하며, 그리고 책을 읽으며 방법을 찾아나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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