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조용호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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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은 1980년대의 야학 연합회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랑하는 동료이자 연인 ‘하원’을 잃어버린 ‘나’는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다 어느 날 그녀와 너무도 똑같은 모습의 (자식뻘 나잇대의) ’희연’을 만나게 되어 그녀와 함께 다시금 본격적으로 실종된 ‘하원’ 찾아가는 여로 구조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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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간 실종되어 의문사로 처리되었던 사람을 추적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플롯도 ‘하원’의 흔적을 추적해가는 서사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추리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히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느낌이 판이하게 다르다. 추리소설이 무언가를 좇는 과정 자체를 중점으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은 그보다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그리움, 먹먹한 울림, 아련한 슬픔 등의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책이 조금 지루하다고 느낄 법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인물들의 감정이 선명하게 와닿는 듯하여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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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한줄평에서 언급했듯이, 조용호 작가님의 문체는 대체로 서정적이다. 일반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것도,

🗣 통유리창 너머로 석양에 물든 하늘이 붉었다. 불붙은 솜 덩어리가 듬성듬성 떠 있는 하늘에 초저녁별이 낮게 떠올라 존재를 드러냈다. (81p)

은유적인 표현들이 생생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또한 인물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쓴 문장들도,

🗣 세월이 흐를수록 하원은 가슴속에 깊이 뿌리내린 내 몸의 일부와 같은 존재로 육화됐다. 일상에서는 잊혀져 갔지만 눈을 감으면 불현듯 떠오르는, 술을 마시면 안개 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연꽃 같은 존재로, 때로는 명치 끝을 아프게 누르는 육신의 멍울 같은 존재로 오래 남았다. (82p)

정말읽는 내내 먹먹한 여운을 지울 없었다. 누군가를 향한 오랜 그리운 마음을술을 마시면 안개 속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연꽃이라 하다니이런 분들이야말로 작가를 하는 거구나 싶었다. 자극적인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쉬이 추천하진 못하겠지만, 한국문학 특유의 묵직한 여운을 좋아하는 분들께는 정말 강력하게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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