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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평점 :
책의 제목이 마음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를 여행하려는 사람은 일독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곳들을 가보지 않은 나는 약간의 코멘트를 하면서 계속 이동하니 잘 집중이 안 되고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여행 가이드북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와 같이 여러 에피소드와 심도 있는 묘사가 없다구나 할까. 내가 이 책에 적응력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벌써 5쇄까지 간 걸보면 상당히 문제작으로 일단은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기행문을 읽으면서 방현석의 <하노이에 별이 뜨다>나 그의 소설<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생각했다. 방현석의 이 작품들도 베트남을 배경으로 쓴 것인데 아직까지 여운이 남는다.
저가의 동남아 여행이 유행처럼 번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중 하나가 베트남, 캄보디아다. 불과 얼마 전 ‘앙코르와트’를 여행하던 우리나라 사람이 비행기 추락으로 13명이 목숨을 잃은 적도 있다. 이 글을 쓰는 (07.09.16) 오늘에도 태국의 20년 노후 비행기가 풋겟에서 추락 1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망설여지지만 베트남에 가서 원조 쌀 국수도 먹고 싶고, 필자처럼 달밤에 앙코르와트의 찬란한 유적도 느껴보고 싶다.
베트남은 우리에게 친근한 나라이다. 월남전에서 용병으로 싸워서 많은 달러를 벌고, 또한 방현석의 글에 언급한 것처럼, 전쟁이라는 미명아래 무고한 양민 학살등 나쁜 짓도 많이 했던 곳이다. 요즈음에는 이 나라 처자들이 장가 못간 농촌 총각들에게 돈에 팔려 시집와서 웃지 못 할 여러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글은 영화에서나 보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 인도차이나의 다른 면을 알게 한다. 100만 명이 넘는 민중을 쓰러트려 살인마라고 알려진 폴포트를 다른 각도에서 균형 있게 해석하고 있다. 비밀 폭격으로 많은 인명을 살해한 미국의 패권주의, 전쟁에 맛 들여 새로운 분란을 일으킨 베트남에게 똑 같은 책임을 묻고 있다.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는 미국은 이라크에서 이상한 명분으로 지금도 죽을 쑤고 있다.
베트남은 문학적으로도 많은 소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직접 베트남에 참전하였던 ‘박영한’이 생각나고,‘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은 월남소재 소설의 압권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1970년대 초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가 유행할 즈음에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과 황석영의 <낙타누깔>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심오한 뜻은 제쳐두고 야자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나나가 천지에 널려 있다는 월남.”(본문 97)
오래 전에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평전>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책의 필자는 그렇게 호의적이지만 않다.
“인해전술로 인민해방군의 시체를 넘으며 싸워 승리한 것을 마오쩌뚱은 자랑스러워할 것인가? 1968년 1월 남베트남에서 민족해방전선의 전사 3만 2천명과 16만 5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구정공세를 호찌민은 자랑스러워할 것인가? 단지 500명의 전사자를 낸 미군을 괴롭혔다는 이유로?”(본문 122)
현대 과학의 첨단 무기를 가진 미국을 베트남이 이길 수 있었던 저력은 외침(프랑스)에 대한 경험과 민족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상의 도로와 같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꾸찌 터널이 공이 크다고 본다.
“ 꾸찌가 남긴 것은 미군과 싸워 이긴 용맹스러운 전사들의 영웅적인 활약과 초인적인 의지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참극과 맞서야 했던 인간들의 비명과 고통, 공포와 절망이 밴 터널의 끝없이 이어진 바닥과 벽이었다.” (본문 69)
현재의 베트남 사회의 문제점도 필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의 1970년대 정도의 경제력에서 급속도록 자본주의화 하면서 여러 예상하지 못한 부정적면이 돌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의 위에 군림하려는 제복들의 횡포와 전횡, 개혁을 표방하면서 더 개혁적이지 못한 관리들.
“베트남에서의 경찰과 군인은 저 멀리 손짓만 해도 달려가 부동자세로 서야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제복 입은 인간들의 고개는 여간해서 굽혀지는 법이 없었으며 표정은 사납기 짝이 없고 태도는 오만방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죽하면 베트남사람들의 그 천성적인 듯 보이는 불친절함과 강퍅함도 결국 이렇게 살다보니 그리 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혁명적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본문 76-77)
“ 호찌민 적자(嫡子)들이 권력을 틀어지고 한번도 내놓은 적이 없으니 고인 물이 썩지 않을 리 없었을 것이다.” (76)
이 책이 집중이 안 되는 것은 일천한 베트남에 대한 배경지식 때문일 것이다. 좀 더 베트남 역사 등을 공부하고 다시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