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 중국 라오스 미얀마 편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김남희의 여행기를 3권 째 읽게 되었다. 한비야의 스케일이 크고 거침없는 오지 탐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김남희의 주로 걷기를 통한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여행기도 흥미 만점이다.  이 두 맹렬 여성 여행가의 또 다른 점은 한비야는 어떤 불가피한 일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행기를 타자 않고 차량 및 걸어서 국경을 넘어 여행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남희는 교통편은 개의치 않고, 가공하지 않는 생생한 자기의 경험담을 범상치 않는 문학적 재능으로 잘 전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중에는 여행에 관한 책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어느 책은 가이드북에 불과한데도 버젓이 여행 기행문으로 소개되어 우리를 혼란시킨다. 한비야와 김남희는 직접 현지에서 부딪치고 경험한 체험기에 자기 여행 중의 감상을 덧붙인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글발에 사진도 전문가 수준 이상인 것으로 본다. 여건상 직접 가보지 않고 세계 여행을 꿈꾸는 자들은 전직 동아일보 기자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과 함께 한비야, 김남희의 책을 강추 한다.

  여행지에서 김남희가 보고 느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재나 괴기한 자연의 조화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중국의 자금성 크기나 규모에 놀라지만 다른 면을 보는 눈도 날카롭다.
 “궁궐의 크기 따위는 하나도 부럽지 않다. 내가 정말 부러운 것은 따로 있다. 자금성과 텐안먼 주변뿐 아니라 베이징 시내 모든 건물의 높이가 철저하게 규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변의 조화를 깨뜨리며 홀로 치솟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 화교가 지었다는 왕푸징 거리의 동방신천지 쇼핑몰을 보자. 초고층으로 지려 했으나 허가가 나지 않아 주변의 십여 개 건물을 하나의 쇼핑몰로 이어서 만들었을 정도로 베이징 시내의 건물은 높이가 철저히 규제된다.  덕수궁과 경복궁 주변의 고층빌딩들, 급기야는 궁터에 남의 나라 공관 직원용 숙소를 허용하려는 우리나라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 48)
  우리나라 같으면 개발논자와 보수신문들이 난리를 치고 매일 규제에 대해서 떠들 것이 자명하다.   

 서태후의 여름 궁전 이허위안에 대한 이 여행기의 묘사는 오랜 역사의  흥망성쇠 속에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 장랑(長廊)은 서태후가 비나 눈을 피해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새운 728미터에 달하는 세운 지붕의 긴 화랑이다. 주인 잃은 과거의 잔영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마침내는 먼지처럼 사라지고만 말 것 같아, 비단 치맛자락이 회랑을 쓸고 가는 소리가 불현듯 그리워진다.” (본문 57)

   김남희는 오지 중에서도 ‘벽오지’를 다닌다고 하는데, 몇 년 있으면 과연 세계에 오지가 존재할까 ? 거역할 수 없는 거대 자본과 문명의 물결이 민심을 급격하게 변하게 하고 있다. 물질문명을 통한 풍족함과 편리성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이면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본능적이다. 이젠 얼마 안 있으면 오지 여행이라는 말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중국은 소수 민족이 독립을 요구할까봐 예민해 한다고 하는데 현재 보다 잘살게만 해 준다면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민족이니 나라라는 개념이 점점 달콤한 문명의 쵸크렛 아래에서 퇴색되어 가고 있다.
“아저씨들께 주자이거우가 유명해진 지 이제 20년이 지났는데 변화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만족한다고 하신다. 내 앞에 놓인 과자를 집으며 이렇게 애기하신다. ‘전에는 이런 과자를 명절 때만 먹을 수 있었지. 이제는 매일 이런 걸 먹을 수 있으니 좋아진 거 아닌가?’ ‘하지만 창족들의 전통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아요?’ 내가 되물었더니 그건 어쩔 수 없다. 한족과 어울려 사는데 변화는 당연하다고 중국어로 열변을 토한다.”( 본문 92. 중국 쓰촨 주자이거우)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위안짠)은 시간이 멈추어 있는 곳으로 소개한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한쪽으로 빗겨나 있는 곳. 피 말리는 경쟁이 없어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이 수도의 이름은 ‘달이 걸린 곳’의 뜻이란다.
“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소박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 고층건물 없고, 차량도 많지 않고, 가게도 없고 분수대 주변의 몇 개의 식당이 시대 중심부의 전부다. 신용카드도 없고 삐그덕리는 선풍기 아래에서 수기로 돈 계산하는 곳이 은행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한 나라쯤은 성장과 소비의 문화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을까.”(본문 233. 라오스 비엔티안)
 
   이 책을 보니 동남아의 개인 여행은 중앙아시아  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후진국의 어쩔 수 없는 교통편이나 숙소의 문제가 아니다. 악착같이 요구하는 관리들의 뇌물 관행이나 바가지요금이 마음을 상하게 하고, 선택이 아닌 주어지 조건에 따라야하는 모든 상황이 이국을 홀로 떠도는 사람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캄보디아를 포기하고 미얀마로 들어간다.

  미얀마는 아주 오래 전에 ‘버마’라고 불렀다. 박경리의 ‘토지’에도 보면 키 크고 마른 사람을 ‘버어마 제비 같다.’ 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와 축구를 하면 수중 전에 강한 나라가 ‘버마’이었다. 남자도 치마(롱지)를 입고, 여자들은 전부 얼굴에 노란 칠(타니카)을 하는 나라. 지금은 미얀마라고 불리지만.
 
  미얀마는 전두환 시절의 ‘아웅 산 국립묘지 폭발 사건’, ‘아웅 산 수지 여사’등이 생각나게 하는 나라다. 치안이 불안하고 인플레이션 등 경제가 엉망인 아시아에서 유일한 군사독재국가로 알고 있다.  김남희는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직업이 교통경찰이란다. 뇌물하고 연관시키면 쉽게 이해가 된다. 또 이 나라의 인레라는 호수에서는 이상하게 발로 노를 젓는다고 한다. 발로 노를 젓는 사공들을 소개하는 잘 찍은 사진을 보니 글보다 더욱 생동감이 있고 신기했다.

  텔레비전의 오지탐험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았던 목에 목걸이를 한 여인의 사진이 있었다. 김남희는 이 글의 소제목을 “카렌족 여자들 목을 늘리는 ’돈‘”이라고 달고 분노했다. 카렌족의 마을을 간 것이 아니라 중국인 호텔 주인이 우리의 민속촌처럼 운영하는 업소에 이 카렌족 여자 몇 명을 데려다 놓은 것이다. 거의 감금하다시피 하여 관광객 사진 촬영용으로 이용한다하니 서글프다. 일인당 3달러의 입장료로 모신다니 그 놈의 돈이 뭔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쓸 수 없는 나라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저자는  9개월째 여행하는 프랑스인 중년 부부를 만난다. 그것도 열네 살 아이가 제일 큰 아이 넷을 데리고. 자기들이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을 가르쳐서 나중에 학교가도 공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하는 동안 익혔다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부모보다 나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남희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바로 여행 경험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꼭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도 좋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인심이 좋고, 보고 느낄 거리도 많다. 우선 가까운 주변 나라들로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가족들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본문 296. 미얀마 수도 양곤) 

     백 번 천 번 동감하는 이야기다. 패키지로 힁하니 갔다가오는 여행 말고, 이 책같이 현지인과 같이 숨쉬고 느끼는 여행을 나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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