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권지예 지음 / 이가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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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예의 <폭소>와 <꿈꾸는 마리오네뜨>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들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흥미 있었고 진지하게 대했던 괜찮은 작품이었던 것으로 나에게 인식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독서 경험도 일천하지만 그나마 독후감 등을 쓰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일에 치어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독후감을 짧게나마 써 왔다면 하는 성찰을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못쓰는 글이나마 ‘꼭 몇 줄이라도 메모해 놔야지’ 거듭 다짐한다.

나는 여행, 특히 외국 기행적 수필류를 선호한다. 내가 외국 중 동경하는 곳이 많고 또 해외여행을 최고의 희망사항으로 여겨왔다. 한 때는 뉴질랜드로 이민 가려고 그 곳의 정보를 알아보고 이민 투자 설명회도 나가 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고,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함을 책을 통한 대리만족으로 그냥 살아가고 있다.

시중에는 수많은 외국의 ‘여행’ ‘이민’ ‘체류’에 관계된 후일담의 책이 쏟아져 나와 있다. 그런데 읽은 만한 것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아무리 특이한 외국 여행 및 거주 경험이 있더라도 문장, 즉 ‘글발’이 따러 주지 않으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권지예의 이 작품은 나에게 딱 이었다. 별 고민 없이 선택하고 킬킬대면서 쉽게 읽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많이 쇠퇴하고 있지만 과거만 하더라도 유학하면 프, 영, 독 이었다. 그 중 프랑스 파리에서의 필자의 좌충우돌 유학 생활은 흥미진진했다.

내가 지금까지 여기저기서 조금 학습한 파리의 인상은 인간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나라라는 점이다. 홍세화의 책을 통해 알은‘똘레랑스’의 나라. 근로자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한 파업으로 교통대란이 일어나도 대체적으로 참고 기다리는 나라. 거리에서 만나는 3명 중 한 명은 흑인일 정도로 인종 전시장같이 포용적인 나라. 경제가 아무리 나빠도 문화적 틀이 워낙 튼튼하여 걱정 없고, 소외된 자를 중시하고 분배에 신경 쓰는 나라 정도이다. 

이 책에도 필자의 딸이 공휴일도 아닌데, 학교에 가지 않는다.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데모에 참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학부모들이 그것을 수용하고 존중해 준다는 이야기는 우리와 다른 면이다. 물론 목에 힘만 주는 일부 교장샘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하고는 또 다르지만 말이다.

이 책에는 황당한 일화가 종종 등장하여 책을 읽는 흥미를 배가 시킨다. (1) 고속도로여행 중,  한국식 공무원 버전의 생각으로 인한 오해에서 생긴 사건,(2) 프랑스는 7을 쓸 때 반드시 허리 중간에 뭔 표시를 해야 하는 데서 발생한 오해. (3) ‘단추 구멍 꿰매기’는 직접 읽어보시라. 생각했던 것과 아주 자른 애기니. (4) 한국도 여자가 담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허 하라. (5) 거지도 도서관에 책을 대출하고, 책꽂이를 갖추고, 크리스마스 추리를 준비하는 것은 차라리 여유 있고 낭만적으로 보인다. (6) 사람 사는 곳 대동소이하듯이 ‘똘레랑스’의 나라 여기도 인종차별 하는 인간이 있는가 보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 곳곳에서 자주 가난한 유학생 운운하는데, 차있고, 아파트에   사르면 양호한 것이 아닌지. 필자가 유학을 마친 것이 98년인가 언제가 본데, 정작 책이 나온 것은 2004년이다. <폭소> 등 인기에 편승해서 책을 낸 것이 아니라 믿는다. 아무튼  많이 읽히면 되지 않나 생각도 해 보고. 이런 작품도 좋지만,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처럼 필자도 좀 더 전문적인 기행문적 수필을 쓰면 그것도 훌륭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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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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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박노자는 (이 책 프로필에 소개된 바와 같이)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역사를 전문가 이상으로 꿰뚫고 있다. 그리고 일상에 묻혀 살아가느라 알게 모르게 허용되고 저질러지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또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귀화는 했을지라도, 의식은 아직 제3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어 그의 문제의식은 더러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박노자가 문제 제기하고 심각하게 염려했던 점이 실제로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아프칸 납치사건’ 과 아직까지도 계속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학력위조 문제’이다.

  일찍이 그는 ‘숭미(崇美)주의에 희생된 예수’에서 무리한 선교활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를 “성리학으로 탄압받았던 종교가 이제는 반도의 한쪽에서 점령군의 위력에 힘입어 성리학이 비워준 자리를 그대로 차지해 그 폐단을 모두 답습하여 확대 재생산”(65쪽)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일부 개신교의 배타성을 이북의 ‘유일 주체사상’과 동급으로 언급하면서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추태를 안타까워한다.  특히 국내에서 수구 결사대로 활동하는 보수적 대형 교회들을 ‘제국의 시녀’라는 용어를 써 가며 공격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기독교인들이 아프칸의 선교 활동을 막는다고 외교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작년인가(2006년), ‘카불’에서 선교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것을 외교부에서 불허했었다. 그 후 종교탄압을 들먹이고, 고발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납치 사건이 일어난 후 그들은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국외에서 무리한 선교 활동을‘물질적 시혜주의’와 ‘교세 확대 제일주의’, ‘현지의 전통에 대한 경멸’(68쪽)이라고 저자는 부정적으로 예견했다. 다소 용어의 사용이 부적절한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올바른 지적이라고 본다. 
  ‘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에서 시간 강사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의 대학의 고질적 폐단을 지적한다.  글쎄 과거의 ‘고래 심줄보다도 더 질긴 학연, 끼리끼리 연대하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대학 패거리 집단’ 등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대학원 심사’‘돈 먹는 하마’ 로 전락하는 일부 교수라는 표현은 과거의 시각으로 돌리고 싶다.  

“결국 주로 도미 유학파에 속하고 명문대에서 둥지를 트는 중년 이상의 학계 실세들이 최근에 늘어난 연구비 지원의 혜택을 받아 그 기득권을 더욱더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고, 지리적(지방대), 신분적(교수, 계약 교수 등등) 주변부에 머무르는 주변적 학자군은 이들 실세가 거느리는 사단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윗분을 잘 모셔야 한다. 그래야 승강기를 타고 몇 층을 올라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학계의 사단 문화야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존재해왔지만 대학 사회 수직적 구조의 심화로 더욱더 고질화됐다.”(110쪽)  이 글이 사실일까? 극히 일부 대학의 사례를 침소봉대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있었던 일?

  ‘외국 박사’라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오늘날 학력 위조 문제가 하루가 멀게 터지는 것은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논제는 이제 식상한 멘트가 되어 버렸다. 체념하는 것이다. 일본은 취업 이력서에 출신 대학 기록 난을 없애 버렸다고 내가 직접 들었는데 일반화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박노자의 글은 개인적으로 볼 때, 많은 부분에서 전적으로 공감하고 우리가 성찰해야 될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반면에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우선 과격한 용어의 사용이 눈에 거슬린다. 견강부회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이고, 극단적인 논리 전개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당시에 그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이나 배경을 모조리 무시하고 그것의 부당성만 맹공  한다.  “지폐에까지 모습을 보이는 율곡 퇴계가 실은 수많은 노비를 부리면서 살았던 귀족계통의 고관현작(高官顯爵)들이라는 것,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사대부가 노비를 때려죽이더라도 처벌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가르치고 토론하면 학교, 군대, 가정에도 폭력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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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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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이 책을 쭉 넘겨보다가,  지은이도 생소하고, 젊은 여자들의 일상에 대한 내용이라고 판단, 선택을 포기하려 했다. 그런데 눈에 확 띄는 구절이 인연이 되어 읽게 되었다.  그것은‘나쁜 여자가 잘 팔린다’라는 소제목의 시작하는 글로, 이런 구절이었다. “나는 내 욕망에 솔직하고 부당한 것에 대한 분을 참지 않고 언제나 재밌는 것을 추구해 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런 내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았다.”(219쪽) 

뭔가 당당하지 않은가? 내가 소시민적 성격으로 그렇게 살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김경은 같은 쪽에서 “나는 흡연, 음주, 동거, 문신 등 나쁜 여자들의 대표적인 전력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살인, 강간에 비해 그리 나쁠 것도 없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여자에게는 꽤 치명적인 것들이다.”라고 정말 솔직하게 말한다. 

우리 사회가 여자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요구하고, 지나치게 봉건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이성인 나로서도 불만 가져 왔었다. 이런 경험을 일부러 할 필요는 없지만, 치열하게 절망하고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과정의 전력이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오히려 이런 전력이 오늘의 김경을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즉 독특한 문체로 미쳐 남이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물흐르 듯이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처녀막과 패션’이라는 도발적 제목 하에 나오는 ‘코톤 톱’이니 ‘탱크 톱' 등 낯 설은 용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그래서 문맥으로 때려잡아서 읽었다.

미셀러니 정도의 글이라 그런지 김경의 지인을 자주 인용한다. 역시 김경의 친구 중에 하나인데, 그녀는 한 마디로 은장도를 품을 정도로 요지숙녀였던가 보다. 그러던 그 친구가 결혼과 동시에 헤까닥하여 삼백 육십 도로 변해서 거의 홀라당 벗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혼인 전과 달리 결혼과 동시에 파격적인 의상을 입었다는 말인데, 미루어 보건대 어디 의상뿐이랴, 의식의 기층엔 문화 의식도 따라가기 마련, 그래서 천의 얼굴을 가진 것이 여자라 하지 않는가?

앞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패션에는 별 관심이 없어 건너뛰려 했는데, ‘전여옥을 패션 제안’은 흥미 있게 보았다. 그것은 단지 옷에 대한 애기가 아니라, ‘전여사의 독설 정치와 패션’정도의 애기였다. 패션을 통한 현 정치인의 풍자였다. 농담식의 가벼운 스케치로 그녀의 정치이력에 대한 평이지만, 그것은 어는 정치 평론보다 더 예리하고 설득력 있었다.    

이 책은 20.30대 초반이 읽으면 더 많이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시대의 흐름에 둔한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은 난감해 할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우선 영어로 표현된 생소한 것이 많다.  ‘원나잇 스탠드’,‘쉬크한 운동’‘비치’. 등 영어가 꽝이면 문맥을 통해 읽어야 한다. 물론 패션의 전문적인 용어를 차치하고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웃기는 부분은, 나는‘낸시 랭’이 외국인 줄 알았다. 글의 내용은 청담동이 나오고, 아빠는 죽고 엄마는 병환 어쩌고 하는 한국 버전인데 외국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그래서 고딩한테 물어보고서야 ‘낸시 랭’이 TV에도 잘 나오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어떤가! 끼 넘치고, 능력 있어, 자신 있게 살아가는 필자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책에 대한 본전을 뽑은 것이다. 매일 술에 떡이 되던, 항상 이탈을 꿈꾸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려 하던, 일 할 때 자기 일 시원스럽게 하면서 정열적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 아닌가? 남을 배려하고, 돈을 꾸어서라도 소외 된 자들을 도우려는 그녀의 마음은 또한 아름답다. 간간이 인용하는 문학 작품으로 볼 때, 필자의 독서량도 장난이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그런데 이 글에는 솔직하다 못해 과감한 성에 대한 표현이 자주 보인다. 문제는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의 성에 대한 유연성을 강조하다 보니, 불필요한 성의 노출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친구가 어느 날‘발정난 암캐’가 되어, 우연히 걸려든‘다섯 살이나 어린 녀석’을 모텔로 데리고 가서(86쪽), “두 살 많은 선배가 ‘트리플 섹스 노하우’와 ‘신음소리 매뉴얼’에 대하서 앙큼하고 대담하게 ‘혀’를 놀린다.”(224쪽) 등 이런 것은 남성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성에대해 점점 과격해지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가져 본다.
그리고 필자는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해 보인다. 어느 부분에서는 ‘여왕’ 같이, 다른 일화에서는 타락한 독신 여성으로 묘사된다. 

아무튼 우리나라 작가의 글은 근래에 잘 안 읽었는데, 이 작품은 잘 선택했다고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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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2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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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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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는 독특한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기존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인정하며 정설로 여겼던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기술 한다. 처음 읽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럴 것이라고 여겨왔던 역사적 사건이 대상이 바뀌어 재평가되는 것도 있었다.

한 시대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필자의 성향이나 성장 배경이 사관으로 정립되어 기술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임에도, 보수의 시각이냐, 아니면 진보적인 입장에서 대했는가에 따라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인다. 자료가 풍부한 바로 몇 년 전의 현대사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에 대해서 전공을 했거나 아니면 꾸준히 관련된 책을 읽은 사람은 어느 정도, 거기에 대한 안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에서 가끔 언급하는, 조각난 역사로 대체하는 나로서는 이 책은 충격이고 분노였다. 보수 신문에서, 명문대 교수를 동원하여 현대사에 대해 칼럼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천편일률적으로 노무현을 까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얼마 전 정년을 퇴임한 어느 역사전공 노교수는 자기도 독재정권 시대에 약간의 액션을 취 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니 386 까불지 마라는 투의 신문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아직도 실체규명 및 해결이 요원한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선 필자는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학살이었다.”(23쪽)라고 규정하고, 그리고 그것이 조직적으로 은폐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학살 사건의 사실 규명 과정 중, 한국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나 한국 사회의 주류 엘리트들이 보인 태도는 ‘대리는 시누이’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머리 까만 미국인’이라고 표현 하였다.

왜 한국 주류 계급의 사람들은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는가. 반미 애기가 나올라 치면, 주류 신문에서부터 난리가 난다. 아주 혼이 난다. 미리 연막을 치고 변호하며 미국에 불리하면 보도도 안한다. 더구나  미국에서 발표하는 성명이라도 있으면 해석을 자의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해서 보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주체적으로 미국을 대하지 못하는가? 얼마 전 남북 정상 회담 때, 서울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몇 만 명이 모여서 회담 반대 시위를 했다. 이것을 본 미국 기자가 방송에 출현,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장면은 슬픈 코미디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고 일방적 발표를 하여 개망신을 당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 될 수 있는가. 이 대선 후보의 첨병 보호막을 치는 조선도 약간 비난하는 멘트를 날릴 정도다. 대선후보는  꼭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야 된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작태는 DNA처럼 그들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전두환을 승인한 미국에 항의의 표시로 미문화원을 학생들이 점령했을 때,“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반공과 친미는 헌법 이상의 국민적 합의’라고 했다.”(27쪽)고 보도 했다. 미국은 과연 그들이 짝사랑하는 만큼 배신하지 않을까?

노무현 정권과 보수 신문들이 의외로 의기투합하고 동조했던 정책이 딱 하나 있다.
즉 보수 언론이 노무현을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까다가 한미FTA에 와서는 입장을 같이 한다.  필자는 ‘투자자 국가소송 제도’문제를 염려하며 “후보 시절에 ‘반미면 좀 어때?’를 외치던 노대통령 밑에서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경이 되었을까?”(47쪽) 한탄한다. 이 책에서 한미FTA를 단호히 반대하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 4편에는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적 책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해전사>가 나올 당시, 독재 정권의 출판 및 현대사의 자료에 대한 탄압으로 현대사 연구는 지난(至難)한 과제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같은 결과물은 큰 성과였다.
아직 읽지 않고, 시기만 재고 있는데 이 글에서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주었다. 이 <해전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도는’(109쪽)충격을 받고 싶다.

1980년대 현대사 연구는 분명히 미숙하고 거친  부분이 있었다고 필자는 인정 한다. 그러면서도 “50대 대학교수들이 친일파나 학살자,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현재의 과거 청산에 대해서는 독립군이 친일파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격문을 내세우며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동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111쪽)라고 비판한다.

유년 시절 부천서 성 고문 사건에 대한 신문의 보도 기억이 났다. 아마도 조선일보 이었던 것 같다. 그 신문 지면에 피해자와 관련된 운동권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이리저리 배치한 기사가 크게 보였다. 즉 범죄 조직을 도해 놓은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을 보고 당시에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삶들이 “ 야! 간첩들이 혁명을 위해 여자의 성도 이용하는구나!”라고 비난했다. 제목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 좌경극렬 용공분자’(167쪽) 와 비슷했으니 그럴게 여길 수밖에. 

제 4부 ‘그때 그 사람들’에서, ‘어깨동무체’‘처음처럼’의 주인공 신영복 교수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우연만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분의 저서 한 권 정도는 모두 읽었을 정도로 유명하시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분이기도 하다. 그의 “석연찮은 이유로 산, ‘비싼 징역.’” (194쪽),   ”수사기록은 외국어보다 낯설었다.“(195쪽)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의 내용은 무겁지만, 읽는 동안 필자의 글발이 뛰어나 술술 읽힌다. 거침없는 독설을 들이퍼붓는 때도 있지만, 사실감 있는 유행어와 현장감 있는 용어도 종종 등장 긴장을 풀어 준다. “퐝당한 싳추에이션” “인터넷 자살골”등

필자는 유시민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 같다. 서울대에 군 진입이 있을 것 같아 모두 피했는데, 유시민 혼자 남아 있었던 것을 “망해가는 나라에 황현”에 비유한 것은 오버 아닌가 싶다. 아무튼 조동문에 연일 얻어맞고, 동료에게 ‘어찌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냐!’로 구설수에 오른 유시민을 우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수구 언론을 ‘독극물’이라고 한 유시민의 표현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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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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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판타지를 읽는가? 현실을 잊기 위한 카타르시스 차원에서 읽는 것인가. 아니면 제한된 소재를 탈피하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배경으로 무한한 상상적 창조가 흥미 있어서 인가?  난생 처음 판타지를 읽게 되었다. 추리 소설로 알고 이 책 1권을 읽고, 본격적 판타지의 여행 2권을 읽게 되었다.

집중이 잘 안될 때는 사실과 현실에 젖어 익숙하게 살아온 것이 원인이 아닌가 했다.  나의 사고가 리얼리티로 너무 전형화 되어 굳어졌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 신경 써서 읽으려고 했다. 전에 읽은 과학 대중화의 기수, 칼 세인건에 대한 기억도 되살려, 이 책 읽는 것을 정당화 하면서 말이다. 비록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코스모스‘ 의 저자이면서 생전에 우주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헌신을 인물,  대중의 상상력 자극한 화성 탐사의 아버지 ’칼 세이건‘은 어릴 때 판타지에 관심이 많았었다. 만화책과 공상과학소설을 열심히 읽었고, 종종 환상과 현실을 혼동했었다. 마법을 거는 명령어를 중얼거리고, 돌의 공중부양도 시도했었다 한다.

전 편에서, 우리의 주인공 와타루는 자기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돌파구를 찾는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갑자기 겪게 되는 복잡한 가정사와 사회 문제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고난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어디로 ? ‘비전’의 세계로,  그 곳은 인간의 상상력 에너지가 만들어낸 장소 이다. 왜 ? 파탄난 가족의 운명을 다시 되돌려 놓기 위해, 어떻게? 운명의 탑의 신을 만나 구원을 요청하려고 힘들고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되돌려 놓고 싶다는 강한 염원이 없다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문, 요어문을 통해 과연 와타루가 이루려는 것은 성공할 것인가?

다혈질이며 재미있기까지 한  마도사의 안내로 와타루는 네 개의 신장들 물음에 성공적인 대답을 한다. 그리고 마도사의 파단 하에 어린 와타루는 견습 용사 프로토타입 1로 결정되고 ‘시험의 동굴’을 나와 정식으로 여행자가 된다. 목적지를 향해서 본격적인 험난한 여행이 계속된다. 이 여행이 성공하려면 우리의 전설에도 반드시 따르는 '조건 해결'이 주어진다. 즉 용사의 검 대좌에 맞는 다섯 개의 구슬을  찾아라! 그러면 ‘운명의 탑’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줄 ‘퇴마의 검’을 얻을 것이다.

와타루는 수인족(獸人族) 도마뱀 남자를 만나 도움을 받고, 터보라는 이름의 다르바바가 끄는 탈 것을 이용 여행의 속도를 낸다.  그런데 여관에 묵던 중 와타루는 처음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여관에서 그는 양카족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오인되어 교수형에 처할 위기를 맞는다. 비전에서 죽으면, 현실의 세계로 오는 것인가?  ‘비전’에서의 사건 추리라고 할까?  와타루가 기지를 발휘해서 범인을 잡고 ‘미나’라는 고양이와 비슷한 냥이족을 알게 된다.

‘비전’의 세계도 인간의 상상력 에너지가 만들어낸 세계라 그런지 현실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그곳에서도 서로 음모하고 배반하며 종족 서로 간의 차별과 증오가 존재한다. 종족 내지는 선과 악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서로 갈등한다.
종교를 가진 종족끼리도 배타성이 매우 강해서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우리 현실 세계의 복사판이다. 

통일제국에서 앙카족 사이에 분쟁이 생기고 거기서 파생된 난민들이 도망쳐 온다. 그들은 노신교 신앙을 가져 왔는데, 그 신앙을 가진 자들이 여행자를 사악한 것으로 여겨 기피하고 혐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타루는 긴장하는데 결국에는 노신교 로브라는 남자에게 붙잡혀 사면초가에 이르게 된다.  그 상황에서 와타루는 죽을 수밖에 없는 최대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책 2권의 말미에 조력자가 나타난다. 누구일까? 읽어 보시길.   

환상의 세계라 그런지 흥미 있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섬세하기까지 한   묘사로 도마뱀을 닮은 수인족, 냥이족을 그려낸다.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배경은 반복되는 일상을 잊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초딩 5년 와타루, 아직은 연약하고 어린 이 소년이 3권에서는 얼마나 성장하고 단단해 졌으며 지혜로워졌을까? 로브라는 노신교 남자에 붙잡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와타루는 이렇게 외친다. “당신들에게 나를 죽일 권리가 있을 리 없어! 나는 노신교 신자 따위 아니야! 현세에서 내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찾아온 여행자야!” (358쪽)
이 절규대로 와타루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여행은 순조롭게 성공할 것인가?
3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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