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박노자는 (이 책 프로필에 소개된 바와 같이)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역사를 전문가 이상으로 꿰뚫고 있다. 그리고 일상에 묻혀 살아가느라 알게 모르게 허용되고 저질러지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또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귀화는 했을지라도, 의식은 아직 제3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어 그의 문제의식은 더러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박노자가 문제 제기하고 심각하게 염려했던 점이 실제로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아프칸 납치사건’ 과 아직까지도 계속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학력위조 문제’이다.

  일찍이 그는 ‘숭미(崇美)주의에 희생된 예수’에서 무리한 선교활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를 “성리학으로 탄압받았던 종교가 이제는 반도의 한쪽에서 점령군의 위력에 힘입어 성리학이 비워준 자리를 그대로 차지해 그 폐단을 모두 답습하여 확대 재생산”(65쪽)하고 있다고 단정했다.  일부 개신교의 배타성을 이북의 ‘유일 주체사상’과 동급으로 언급하면서 일부 극우 기독교인들의 추태를 안타까워한다.  특히 국내에서 수구 결사대로 활동하는 보수적 대형 교회들을 ‘제국의 시녀’라는 용어를 써 가며 공격한다.

  몇 년 전부터, 일부 기독교인들이 아프칸의 선교 활동을 막는다고 외교부 장관에게 항의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작년인가(2006년), ‘카불’에서 선교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것을 외교부에서 불허했었다. 그 후 종교탄압을 들먹이고, 고발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납치 사건이 일어난 후 그들은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국외에서 무리한 선교 활동을‘물질적 시혜주의’와 ‘교세 확대 제일주의’, ‘현지의 전통에 대한 경멸’(68쪽)이라고 저자는 부정적으로 예견했다. 다소 용어의 사용이 부적절한 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올바른 지적이라고 본다. 
  ‘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에서 시간 강사 문제를 시작으로 우리의 대학의 고질적 폐단을 지적한다.  글쎄 과거의 ‘고래 심줄보다도 더 질긴 학연, 끼리끼리 연대하고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대학 패거리 집단’ 등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대학원 심사’‘돈 먹는 하마’ 로 전락하는 일부 교수라는 표현은 과거의 시각으로 돌리고 싶다.  

“결국 주로 도미 유학파에 속하고 명문대에서 둥지를 트는 중년 이상의 학계 실세들이 최근에 늘어난 연구비 지원의 혜택을 받아 그 기득권을 더욱더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고, 지리적(지방대), 신분적(교수, 계약 교수 등등) 주변부에 머무르는 주변적 학자군은 이들 실세가 거느리는 사단 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윗분을 잘 모셔야 한다. 그래야 승강기를 타고 몇 층을 올라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학계의 사단 문화야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존재해왔지만 대학 사회 수직적 구조의 심화로 더욱더 고질화됐다.”(110쪽)  이 글이 사실일까? 극히 일부 대학의 사례를 침소봉대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있었던 일?

  ‘외국 박사’라는 말이 나와서 말이지, 오늘날 학력 위조 문제가 하루가 멀게 터지는 것은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논제는 이제 식상한 멘트가 되어 버렸다. 체념하는 것이다. 일본은 취업 이력서에 출신 대학 기록 난을 없애 버렸다고 내가 직접 들었는데 일반화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박노자의 글은 개인적으로 볼 때, 많은 부분에서 전적으로 공감하고 우리가 성찰해야 될 문제점을 잘 지적했다. 반면에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우선 과격한 용어의 사용이 눈에 거슬린다. 견강부회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도 보이고, 극단적인 논리 전개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당시에 그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상황이나 배경을 모조리 무시하고 그것의 부당성만 맹공  한다.  “지폐에까지 모습을 보이는 율곡 퇴계가 실은 수많은 노비를 부리면서 살았던 귀족계통의 고관현작(高官顯爵)들이라는 것,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사대부가 노비를 때려죽이더라도 처벌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가르치고 토론하면 학교, 군대, 가정에도 폭력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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