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는 독특한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기존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인정하며 정설로 여겼던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기술 한다. 처음 읽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그럴 것이라고 여겨왔던 역사적 사건이 대상이 바뀌어 재평가되는 것도 있었다.

한 시대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필자의 성향이나 성장 배경이 사관으로 정립되어 기술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임에도, 보수의 시각이냐, 아니면 진보적인 입장에서 대했는가에 따라 천양지차의 차이를 보인다. 자료가 풍부한 바로 몇 년 전의 현대사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에 대해서 전공을 했거나 아니면 꾸준히 관련된 책을 읽은 사람은 어느 정도, 거기에 대한 안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이저 신문에서 가끔 언급하는, 조각난 역사로 대체하는 나로서는 이 책은 충격이고 분노였다. 보수 신문에서, 명문대 교수를 동원하여 현대사에 대해 칼럼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천편일률적으로 노무현을 까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얼마 전 정년을 퇴임한 어느 역사전공 노교수는 자기도 독재정권 시대에 약간의 액션을 취 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니 386 까불지 마라는 투의 신문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아직도 실체규명 및 해결이 요원한 노근리 사건을 다루고 있다.  우선 필자는 “충북 영동의 노근리 사건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학살이었다.”(23쪽)라고 규정하고, 그리고 그것이 조직적으로 은폐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학살 사건의 사실 규명 과정 중, 한국 정부의 일부 관료들이나 한국 사회의 주류 엘리트들이 보인 태도는 ‘대리는 시누이’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머리 까만 미국인’이라고 표현 하였다.

왜 한국 주류 계급의 사람들은 미국 앞에 서면 작아지는가. 반미 애기가 나올라 치면, 주류 신문에서부터 난리가 난다. 아주 혼이 난다. 미리 연막을 치고 변호하며 미국에 불리하면 보도도 안한다. 더구나  미국에서 발표하는 성명이라도 있으면 해석을 자의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해서 보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주체적으로 미국을 대하지 못하는가? 얼마 전 남북 정상 회담 때, 서울에서 성조기를 흔들고, 몇 만 명이 모여서 회담 반대 시위를 했다. 이것을 본 미국 기자가 방송에 출현,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장면은 슬픈 코미디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고 일방적 발표를 하여 개망신을 당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 될 수 있는가. 이 대선 후보의 첨병 보호막을 치는 조선도 약간 비난하는 멘트를 날릴 정도다. 대선후보는  꼭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야 된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이런 작태는 DNA처럼 그들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전두환을 승인한 미국에 항의의 표시로 미문화원을 학생들이 점령했을 때,“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반공과 친미는 헌법 이상의 국민적 합의’라고 했다.”(27쪽)고 보도 했다. 미국은 과연 그들이 짝사랑하는 만큼 배신하지 않을까?

노무현 정권과 보수 신문들이 의외로 의기투합하고 동조했던 정책이 딱 하나 있다.
즉 보수 언론이 노무현을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까다가 한미FTA에 와서는 입장을 같이 한다.  필자는 ‘투자자 국가소송 제도’문제를 염려하며 “후보 시절에 ‘반미면 좀 어때?’를 외치던 노대통령 밑에서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경이 되었을까?”(47쪽) 한탄한다. 이 책에서 한미FTA를 단호히 반대하는 것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 4편에는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적 책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해전사>가 나올 당시, 독재 정권의 출판 및 현대사의 자료에 대한 탄압으로 현대사 연구는 지난(至難)한 과제였던 것으로 묘사된다. 이런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같은 결과물은 큰 성과였다.
아직 읽지 않고, 시기만 재고 있는데 이 글에서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 주었다. 이 <해전사>를 읽고 ‘피가 거꾸로 도는’(109쪽)충격을 받고 싶다.

1980년대 현대사 연구는 분명히 미숙하고 거친  부분이 있었다고 필자는 인정 한다. 그러면서도 “50대 대학교수들이 친일파나 학살자,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현재의 과거 청산에 대해서는 독립군이 친일파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격문을 내세우며 자학사관에 빠져 있다고 동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111쪽)라고 비판한다.

유년 시절 부천서 성 고문 사건에 대한 신문의 보도 기억이 났다. 아마도 조선일보 이었던 것 같다. 그 신문 지면에 피해자와 관련된 운동권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이리저리 배치한 기사가 크게 보였다. 즉 범죄 조직을 도해 놓은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것을 보고 당시에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삶들이 “ 야! 간첩들이 혁명을 위해 여자의 성도 이용하는구나!”라고 비난했다. 제목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삼는 좌경극렬 용공분자’(167쪽) 와 비슷했으니 그럴게 여길 수밖에. 

제 4부 ‘그때 그 사람들’에서, ‘어깨동무체’‘처음처럼’의 주인공 신영복 교수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우연만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분의 저서 한 권 정도는 모두 읽었을 정도로 유명하시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의 질곡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분이기도 하다. 그의 “석연찮은 이유로 산, ‘비싼 징역.’” (194쪽),   ”수사기록은 외국어보다 낯설었다.“(195쪽)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의 내용은 무겁지만, 읽는 동안 필자의 글발이 뛰어나 술술 읽힌다. 거침없는 독설을 들이퍼붓는 때도 있지만, 사실감 있는 유행어와 현장감 있는 용어도 종종 등장 긴장을 풀어 준다. “퐝당한 싳추에이션” “인터넷 자살골”등

필자는 유시민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 같다. 서울대에 군 진입이 있을 것 같아 모두 피했는데, 유시민 혼자 남아 있었던 것을 “망해가는 나라에 황현”에 비유한 것은 오버 아닌가 싶다. 아무튼 조동문에 연일 얻어맞고, 동료에게 ‘어찌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냐!’로 구설수에 오른 유시민을 우호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언급이 없지만, 수구 언론을 ‘독극물’이라고 한 유시민의 표현은 압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