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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흔히 아줌마들이 많이 보는 우리나라 TV 연속극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가계도를 가지고 보아야 알 수 있도록 얼키설키 얽힌 가족사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겹사돈을 맺는다든지 상식을 벗어난 특이한 인물 구성이 많다. 이 글에서도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이복 남매이다. 같은 학년, 같은 반에서 서로 교류 없이 소 닭 보듯이 생활한다. 이런 설정으로 우리 연속극 맬로물을 상상했었다. 선입감이었다. 우리 연속극처럼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으면서 서로 화해하고 소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남녀공학의 북고에서는 연례행사로 ‘보행제’를 실시하였다. 24시간 동안 잠깐씩 쉬어가면서 계속 걷는, 어찌 보면 형식상으로는 군대에서 100키로 행군과 마찬가지이다. 군인들처럼 고지를 점령하기위해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힘들고 괴로운 ‘보행제’였지만, 지나고 나면 고생했던 만큼의 최고의 추억이 될 수 있는 행사였다. 이 소설은 80킬로를 걷는 동안의 학생들의 미묘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그려 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책 한권도 채울 수 있는 감수성어린 그들만의 이야기를 해안가, 논두렁 등 자연을 통해서 작가는 아름다고 슬프게 그려내고 있다. 서로 그리워하다 시기하며, 화해하는 다소 감정의 기복이 심한 그들의 젊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들은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꾼다. 그렇게 홀로서기를 바라지만 지난 세월 동안 ‘했었더라면’ 하는 것을 못함을 후회하고 타이밍을 놓친 것을 성찰한다. “ 이 책을 10대의 첫머리에서 읽어 두었더라면 나를 만들기 위해 뭔가가 되어주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분해서 견딜 수 없어졌어.”(155쪽)
‘보행제’에서 중도에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최고의 수치로 생각한다. 그래서 상급생들은 부상으로 중도포기 해야 할 경우라도 울면서 버스를 타지 않는다. 이런 고행이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되고, 가슴을 열고 서로 돕고 이해하는 넉넉함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대함과 피 끓는 청춘의 열기가 ‘보행제’를 통해서 아주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이것은 딴 애기지만, 그리고 여기 나오는 ‘보행제’ 가 픽션인지 모르지만, 언제가 일본에 갔을 때 일본고교 교육계획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 고교와 교육과정이 거의 똑 같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이 마치 우리나라 고교생들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일본이 어떤 지리적 위치와 이런저런 이유로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고교도 이런 형태의 좀 더 원시적인 행사를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학여행보다 이게 더 좋아. 졸업한 선배들이 그렇게 말하는 거 이해하겠어.”(336 쪽)
이 소설에서의 백미는 이복남매인 도오루와 다카코가 서로 말을 걸고 소통하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엄마들의 꺼칠한 관계를 극복하고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인가?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따뜻한 혈육의 사랑을 확인할 것인가?
“정말로, 정말로, 사소한 내기였다. 내기라고 부를 것도 없는, 작은 바람이었던 것이다. 니시와키 도오루에게 말을 걸어, 대답을 듣는 것. 겨우 이것이, 이 단체보행 동안에 자신과 한 내기였다.”(205쪽)
이 소설을 읽을 때, 생소한 일본 이름으로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좀 혼동됐다. 이름과 성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여 앞으로 다시 가야 했고, 여학생도 ‘그 녀석’이라고 되어있어 헷갈렸다.
“보행제가 끝나면서 드라마도 같이 끝난다.”(3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