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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르수 우잘라 -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블라디미르 클라우디에비치 아르세니에프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원숭이 과 동물 이름 같은 제목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저자 이름 역시 무지하게 길었다. 마치 도스또예프시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의 등장인물인 표돌 파블리치 까라마조프 처럼 생경한 저자의 이름으로 기억을 더듬어 러시아 사람인 것을 짐작했다.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이라는 소개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공감이 갔다.
아르세니에프의 탐험대와 같이 우수리 강변을 탐험하는 데르수 우잘라는 오랜 경험으로 자연의 일부가 된 사람이다.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야생 동물의 생리를 모두 파악하여 서로 대화까지 한다. 심지어는 동물도 사람과 동일시하여 사람을 부르듯이 동물들을 대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나로서는 도무지 짐작도 해볼 수 없는 흔적이었지만 데르수는 발자국의 주인이 우데헤 인이며, 검은담비를 사냥하고 있고, 손에 도끼와 지팡이, 그리고 검은담비 사냥용 그물을 들고 있다는 것까지 추리해냈다. 게다가 보폭으로 판단하건대 나이가 젊다고 확신했다. 데르수는 문제의 발자국이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는 점에서 발자국의 주인은 사냥을 마치고 야영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단정했다.”(253쪽)
이 글은 논픽션으로 극동 시베리아 탐사 기행문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 확대와 축소된 지도가 나와 있어서 지도를 보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박경리의 토지로 친근해진 블라디보스톹크의 위쪽으로 펼쳐진 지역 탐사로, 1927년대의 당시의 생활상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탐사 기록에는 일본통치 시대의 우리 민족의 대한 흔적도 발견되는데, 한 번은 조선인의 일가족이 모두 죽은 해골로 발견괸 것을 소개한다. 데르수는 금광을 캐러 왔다가 굶어 죽은 일가족으로 짐작한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우리 조선인의 수력을 이용하는 지혜를 소개 했다.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처음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것이 반복되자 궁금해 졌다. 장바오가 조선인은 수력을 이용한다고 가르쳐줬다. 수력을 이용하는 면에서는 아시아 대륙의 동방민족들 중 조선인만큼 능한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중국인에게는 이런 기계가 없다.”(181쪽)
“이곳에서 조선인의 삶은 한마디로 약탈과 착취다.”(181쪽) 왜 이따위 말을 했을까? 궁금했다. “자연에 미치는 악영향은 더 컸다.” (186쪽) 무슨 근거로 이런 표현을 했을까 반발심을 억누루고 읽어보니, 화전, 즉 밭을 일구기 위해서 일부러 불을 질러서 검은담비를 먼 데로 도망치게 한 것을 매우 불만스럽게 지은이가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도 우리 민족의 삶에 대한 끈기 있는 생활 태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인데, 상대적으로는 무작정 자연 훼손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이 강을 건너면서 진행되는 위험천만한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스릴이 있다. 그것은 묘기 대행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별 장비 없이 이루어지는 탐사이니 위험에 직면할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손에 잡히듯한 섬세한 묘사와 함께, 수시로 나타나는 자연이 펼치는 무공해 쇼는 마치 내가 직접 탐사에 참가한 것 마냥 착각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이 글의 초점은 고드리족의 원주민 사냥꾼인 데르수 우잘라에게 맞추어져 있다. 아르세니예프가 이 번 탐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잘라의 공이 크다. 자연과 교감하며 언제나 따르는 목숨을 담보한 위험을 미리 예측하여 피하게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으로 가르쳐주는 데르수. 파괴를 일삼고 정복의 대상으로 자연을 대하는 현대인에게 귀중한 메시지를 준다.
다소 읽는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를 상상하며 정성들여 읽는다면 그 만큼 얻을 것이 많은 글이다. 서로 경쟁하며 아무데나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그런 삭막하고 황폐한 삶이 아니라, 데르수의 자연친화적이고 우주만물의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욕심없이 순수하게 살아가는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편안함을 얻고 자연의 섭리를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