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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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고등학교에서는, 전에 보충수업, 특기 적성 수업이라고 칭하던 것을‘ 방과 후 교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도 ‘방과 후’인데, 우리가 행하는 입시를 위한 보충 수업하고는 개념이 다르다. 즉 정상 수업이 끝나고 클럽 활동하는 것을 주로 말한다. 우리 인문계 고교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커리큐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학교 내에서의 살인사건을, 그 학교의 구성원의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수학선생 마에시마가 추리해 나가는 내용이다. 물론 살인의 칼끝은 마에시마 본인도 정 조준 되어 노리고 있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학교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여자고등학교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론 반전을 위한 작가의 장치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고교 생활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해 재미를 더 한다.

여기 등장하는 학교는 규율이 비교적 엄격한 것으로 보인다. 다카하라 요코라는 여학생은 머리까지 강제로 잘리는 수모를 당한다. 그녀가 불량학생인지 자유분방한 학생인지는 모르지만 학교의 입장에서는 문제아로 판단되는 것으로 본다. 그녀는 마에시마에게 의문의 전화를 하고, 살인 사건 장소에서 목격되어 용의자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녀는 학생지도 샘에게 강한 불만을 가진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머리를 쥐가 파먹은 것 마냥 강제로 잘라 문제를 일으키는 샘이 간혹 있다. 하기야 교직이 삼사십 만 조직이니 별에 별 사람이 다 있어 그렇다고 쳐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물론 너무 학생들을 너무 방치하고 외면하는 것이 더 나쁜 것이지만.

아무튼 교육은 참 힘든 것이다. 특히 여학교에서는 말 한 마디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니 적극적으로 교육하기는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어느 정도는 남학교도 통용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개인적 편견인지 모르지만, 여학생은 어떤 면에서는 얌전하고 성실하여 큰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드물지만, 아주 집요하고 집착력이 강하다고 본다. 남학생에 비해 더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커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섬뜩할 정도로 자아가 강하다. 여학교에서는 미움도 호감도 적이 될 수 있고 공격의 대상으로 찍힐 수 도 있다. 그래도 이것은 좀 특수한 경우이고 여학생들이  잔정이 많고, 붙임성이 있어 좋은 경우가 더 많다.  

학교 내의 탈의실에서 수학교사가 살해당한다. 작가는 이런저런 장치를 용의주도하게 설정하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게 만든다. 중반을 읽으면서까지, 내가 짐작한 범인이 진범이 아니었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이것은 작가의 탄탄한 구성에서 비롯되는데, 트릭을 때로는 강하게, 어떤 부분은 약하게 설정하여 긴장감과 의구심을 갖게 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교 시절을 반추하면서, 등장인물인 학생의 정도에 벗어난 행위를 나무라고, 지나친 샘들의 몰인정함에 분노하다 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 간다. 더구나 살인 사건이 치외법권 지역으로 여길 정도의 순수한 학교에서 뻥뻥 터지니 읽는 이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학생들의 교활함에 놀라고, 사소함이 역사를 바꾸듯이, 이 사건과 연결되는 것에 한탄하다 보면 이 책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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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력 - 내일로 가는 길을 책에서 찾다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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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천의 『사기』는 대나무 즉 죽간에 쓴 것으로 이것이 역사적으로 전해 온 것이라 한다. 사마천은 부친의 목숨을 앗아가고 집안을 풍지박산으로 만든, 올바른 ‘正史’에 관한 기록을 위하여 다시 한 번 도전한다. 남자로서 치명적이고 굴욕적인 수모를 당하면서, 오늘날 까지 고금의 보물로 여겨지는 『사기』를 썼다. 특히 그 중에서도 ‘열전’은 몇 번을 읽어도 새롭고 또한 감동적인 글이다. 한때는 이런 이유로 사기의 열전의 번역본을 다 모은 적도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책 제목 때문이다.   『冊曆』도 아닌 책의 힘(冊力이)라는 제목의 책(冊)자가 마음에 다가왔다. 이 책자는 대나무를 반을 갈라서 그곳에 기록한 것을 뜻하는 상형문자이다. 그러면 ‘사기’는 몇 수레의 대나무가 필요했을까.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라고 했을 때, 흔히 男兒湏讀五車書(남아수독오거서)라는 것은 대나무 다섯 수레를 읽어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전체적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말이다.

책 읽기 지침서 정도로 평가되는 안상헌의 이 책에서는 ‘看書痴’가 되기보다는 균형 있는 독서를 주문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죽어라 읽어야 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읽고 생각하기를. 어느 정도에 이르러서는 조금 읽고 많이 쓸 것을 권한다. 책만 많이 읽고 그것을 자신에게 응용하고 적응하여 확대시키지 못하면 자기만의 카오스에 빠진다고 경계한다. 한 마디로 실용적인 독서를 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부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도식적이고 체계적인 것보다는 읽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기억에 남기고 싶으면 기록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물론 자기 생각을 가미해서 말이다.

저자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정보와 자료, 지식들을 입력하면 부작용이 올 수도 있습니다.”(134쪽) 라고 말한다. 그러면 필요에 따라 발췌독만 하라는 것인지, 앞부분의 본인의 글하고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하면서“책에서 배운 것은 일반적인 원리와 지식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할 때는 자신에 맞게 개선하거나 수정해야(중략) 지나치게 책을 읽다 보면 맹신이 생겨서, 무비판적 적용, 현실 도피처로 책을 선택(요약 인용), 책은 자신을 충전하고 발전하고 휴식할 수 있는 영혼의 집입니다.(134쪽)  이것은 마치 영화를 보고, 현실과 혼동해서 그 영화의 세계를 그대로 모방하려 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과 같다. 또 돈키호테 마냥 기사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과대망상증에 이를 수도 있으니 지나치게 읽지 말라는 것과 별반 다름없다. 생활력도 없이 책만 읽는 백면서생을 경계하거나, 편중된 독서를 신중하게 생각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 할 수 있어도 “필요한 것 이상의 정보를 얻지 말라.”는 것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의 한도를 규정하는 것도 어렵고 그대로 실행한다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글의 제목처럼 그 책력 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얻게 되는 지혜와 통찰력으로, 본인의 독서의 완급을 조정하고 자발적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한 경쟁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인간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더욱 고단하다. 무엇하나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과 어려움만이 엄습해 올 때, 이런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책을 드는 사람도 있다. 비록 많다고 보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도 재미있는 책을 통하여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삶을 누리라고 충고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책 말고도  요즈음에는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많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순간이며 돈 또한 많이 들으니 책을 통한 위안과 기쁨이 제일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피터 드러커의 지식사회라는 용어를 들어, 저자는 우리나가 IMF 구제금융 시기를 지나면서 산업사회를 벗어나 지식사회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즈음 각 회사에서는 독서 클럽을 만들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며 책도 많이 사준다고 들었다. 이런 제도가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특색사업이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좀 부끄러운 일이지만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데도 책을 사는 것에 인색하다. 그것은 오너의 식견과 의지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 일 것이다. 앞으로 책을 통하여 조직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지식 축적을 통하여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야 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책을 많이 읽으면 지적 오만에 빠지는 것을 이 글에서 경계한다. 조심해야 될 충고이다. 무조건 모든 것에 논리를 들이대고, 다른 사람과 자신이 아는 양을 비교하여 외면하고 무시하는 작태를 또한 항상 성찰해야 한다. “책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로 읽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로 읽혀져야 합니다. 그래야 지적 오만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118쪽) 필자의 이 지적은, 지금은 그럴 주제도 못되지만, 앞으로 명심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성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면서 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그러기 위해서는 ‘책은 최고의 신하’다. ‘책으로 마음 닦기’ ‘깨어 있는 즐거움’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등등 이것은 이 책의 소제목들이다. 필자의 정결하고 심층적인 책읽기를 통한 내공의 응결체인 촌철살인의 글귀다.

 이 책을 읽어 나의 부진한 책읽기에 활력으로 삼고, 잘못 가려는 독서의 길을 바로 잡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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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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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생경하여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같은 저자의 작품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암시한 내용이라고 한다. ‘삼월은’을 읽었지만 기억에 없고, 확인해 보아야겠다. 『밤의 피크닉』에 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온다 리쿠의 작품이 나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 소설은 고교, 대학 동창인 남녀 4명이,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나 40대가 넘어서 Y섬을 함께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냥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고백과 점검으로 시작된다. 하나의 지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4명에게 전해지며, 또 다른 과거가 앞을 가로 막는다. 그들의 은밀하고 세밀한 대화가 섬세한 물결을 이루어 읽는 사람을 잡아 다닌다. 일상을 떠나 비일상에서 전개되는 그들의 ‘과거’의 사연들은 ‘숲’에서 서로 이어지고 그러다 길을 잃는다.

 작중 인물 4명이 각각의 시각에서 서술해 나가는데, 상권에서는 ‘리에코 와 아키히코’주도한다. 남녀 4명이 서로 얼키설킨 복잡한 과거사를 만나며 나는 감탄하고 절망했다. “우리의 뇌세포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더 늦기 전에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탐구하자고 여행을 독촉하는데” 우리는 그 여행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34쪽)  그리고 “최고의 미스터리는 ‘과거’다. ‘과거’에야말로 진짜 미스터리가 있는 것이다.”라며 기억을 더듬을 것을 주장한다.

이 소설 전반부를 읽으면, 수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행문도 아닌 애매한 글을 대하게 된다. 그러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쓸쓸하며,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온다 리쿠의 설득력있는 문장과 그의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어? 상냥함과 잔혹함은? 친절과 심술은? 미움은 어디에서 시작해? 그것이 사랑과 어디가 다르다는 거지? 웃는 얼굴로 때리면 미움이고, 울면서 때리면 사랑인 거야?(193쪽)

1권이라 무엇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았던 등장인물이 수 십 년이 지나 생각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나 같으면 불편하여 이 여행을 박차고 나왔을 같은데 그들은 인내심 있게 서로를 보듬고 살펴보는 중에 있다. 특히 미사키 아키히코의 과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수국’을 떠올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 편의 미스터리다.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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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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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특별한 설정이다. 어느 날 평범한 가정에 불은이 닥쳐온다. 헤이스케는 무리를 했지만, 30평이 채 안되는 마당이 딸린 낡은 주택을 사서 지극히 평범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가장이다. 회사에서  만난 아내 나오코와 그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처 나오코가 딸과 함께 처가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표면적으로 처는 죽고 딸은 살아나지만, 딸의 몸에 나오코의 영혼이, 다시 말하면 나오코와 딸의 육체가 바뀐 것이다.

헤이스케는 몸은 딸인데, 영혼은 자기의 처인, 정체성이 애매한 여자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한다. 그렇지만 사람인지라 그냥저냥 적응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헤이스케가 모나미의 담임선생에게 호감을 보이자 나오코가 미묘한 질투를 나타내는 등 이런저런 일이 일어난다.

모나미가 아닌 나오코는 딸의 학교를 다니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려 한다. 헤이스케와 담임이 반대하는 사립중학교를 진하하려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자기의 인생을 다시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정신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확실한 여자.”(198쪽)가 되려고 노력한다.

헤이스케는 자기 가족을 박살낸 사고 운전사 부인에게 인간적 배려를 아끼지 않는 등 휴매니티한  사람이다. 정이 많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가정에도 성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딸도 아니고 그렇다고 처도 아닌 나오코와의 관계에 고심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비밀이다.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1권을 읽어서는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다. 전생에 어떤 착오가 있었는지 하는 초자연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나오코에대한 다른 설정이 있는지 읽는 내내 궁금해졌다.  이 책의 끝에 2권을 읽으면 비밀이 풀립니다. 라고 말한다. 2권을 읽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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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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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기 고백형인 서술형의 긴 소설을 읽었다. 호소하고 설득하는 듯한 작중인물의 목소리는 우울하면서도 슬프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이‘인종 차별’이라는,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유색 인종의 고단한 삶을 힘들게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을 잘 나타낸다. 한 편으로는, 인간의 삶 자체가 불안전하고 끝없이 회의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존재론적 고민까지 느끼게 한다.

저자가 한국 이름인데 번역자가 있다. 그렇다 저자는 이민 1.5세다. 고학력자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이라는 나라로 세 살 때 이민 간 저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프로필과 연관하여 자전적 소설인 부분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그의 언행으로 볼 때, 대통령 당선자는 영어를 더 중시하는 정책을 펼 것으로 본다. 국어도 영어로 가르치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전형적인 현실주의자라 할 수 있고, 뭐라고 평가하기가 겁난다. 아무튼 영어는 우리에게 권력이요, 아킬레스건이다. 이 글에도 주인공이자 작중화자인 헨리 박은 완벽한 ‘네이티브 스피커’(원제목)가 되기 위해서 고전분투 한다.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온 아버지가 식료품 가게를 하면서 콩글리쉬 밖에 못하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경멸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발음 잘하려고 해도 원어민과 차이가 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절망한다.

선진국 이민이 붐을 이룰 때,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하는 것보다 뉴질랜드가서 양털 자르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래서 너도 나도 이민의 대열에 끼게 되었는데, 특히 우리나가 구제금융을 받던 때가 피크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새삼스럽게 이런 슬픈 삽화를 왜 끄집어 내냐 하면, 이 소설에서는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척박하다고 여겨지는 고국을 등지고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그들과 같이 동해한 아이들은, 또 현지에서 태어난 2세들은 잘 적응하고 있을까. 헨리 박과 같이 주변인이자 경계인으로 자의식 속에 빠져 부정하고 회의하고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늦은 나이에 영어가 딸려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헨리 박의 어머니 같이 이웃에 필요한 것을 빌리러 가기보다는 그냥 체념하지는 않는 것인가.

헨리 박의 유년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생활에서 유색 인종이라는 놀림에 주눅이 들어 살았다. 그러다보니 매사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이것도 저것도 확실하지 않은 경계인으로서 겉도는 생활을 해 온 것이다. 또한 그의 부친은 그가 본받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완고하고 유교적이며 강압적인 그의 부모에게 불만이 많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는 전형적인 아버지 상이라도 미국식 생활에 익숙해진 gps리 박에게는 하나하나가 압력이고 폭력이었을 것이다.

백인 여성과 결혼한 헨리 박은 탐정 비슷한 스파이 짓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백인 여성 릴리아와의 결혼을 완고한 그의 부친이 허락하고 더욱이 반기었다는 것이다. 백인에 대한 동경과 열등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밋의 죽음으로 별거에 들어가는 파국을 맞는다.  아버지의 불만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존강이라는 한국교포를 추종하는 헨리 박. 그는 얼마나 더 만족한 미국 시민으로 편입되어 갈까.

진지하고 거침없이 서술해 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이 고국의 언어를 결코 배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애가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감각 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몰론 이것은 동화주의적 감상이며, 나 자신과 이 땅의 추하고 또 반은 맹목적인 로맨스의 일부이기도하다.”( 4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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