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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좀 생경하여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같은 저자의 작품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암시한 내용이라고 한다. ‘삼월은’을 읽었지만 기억에 없고, 확인해 보아야겠다. 『밤의 피크닉』에 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으니, 온다 리쿠의 작품이 나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이 소설은 고교, 대학 동창인 남녀 4명이, 졸업한 지 십 수 년이 지나 40대가 넘어서 Y섬을 함께 여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냥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고백과 점검으로 시작된다. 하나의 지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4명에게 전해지며, 또 다른 과거가 앞을 가로 막는다. 그들의 은밀하고 세밀한 대화가 섬세한 물결을 이루어 읽는 사람을 잡아 다닌다. 일상을 떠나 비일상에서 전개되는 그들의 ‘과거’의 사연들은 ‘숲’에서 서로 이어지고 그러다 길을 잃는다.
작중 인물 4명이 각각의 시각에서 서술해 나가는데, 상권에서는 ‘리에코 와 아키히코’주도한다. 남녀 4명이 서로 얼키설킨 복잡한 과거사를 만나며 나는 감탄하고 절망했다. “우리의 뇌세포는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며 더 늦기 전에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탐구하자고 여행을 독촉하는데” 우리는 그 여행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34쪽) 그리고 “최고의 미스터리는 ‘과거’다. ‘과거’에야말로 진짜 미스터리가 있는 것이다.”라며 기억을 더듬을 것을 주장한다.
이 소설 전반부를 읽으면, 수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행문도 아닌 애매한 글을 대하게 된다. 그러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쓸쓸하며,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온다 리쿠의 설득력있는 문장과 그의 여러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의 경계는 어디에 있어? 상냥함과 잔혹함은? 친절과 심술은? 미움은 어디에서 시작해? 그것이 사랑과 어디가 다르다는 거지? 웃는 얼굴로 때리면 미움이고, 울면서 때리면 사랑인 거야?(193쪽)
1권이라 무엇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살았던 등장인물이 수 십 년이 지나 생각의 퍼즐을 맞추어 나가고 있다. 나 같으면 불편하여 이 여행을 박차고 나왔을 같은데 그들은 인내심 있게 서로를 보듬고 살펴보는 중에 있다. 특히 미사키 아키히코의 과거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수국’을 떠올리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 편의 미스터리다. 2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