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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매우 감동적이라는 이 책을 친구로부터 받고나서, 제목을 보니 전쟁을 취재했다고 되어 있었다. 그것도 16년간이나. 지금 평화의 시대에 무슨 생뚱맞은 전쟁이냐 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지였다. 이 책은 2003년 이 전의 취재기록으로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 내전이라고 평가하지만 말이다. “나의 혁명, 나의 해방구”에 나오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버마가 현재 미얀마로 바뀌었으니, 취재 시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서문이나 후기 등이 없거나 빈약하여, 정문태라는 기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출판사를 보니 한겨레 신문사였다. 신문을 구독하지는 않지만 “역시 ‘한겨레’ 로군.” 이라는 감탄이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팔레스타인에서 납치되었다가 구사일생 목숨을 구하고, 아직도 불모의 아랍 지역에서 분투하고 있는 KBS의 용태영 기자가 생각났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람들이 있으니 기자라는 부정적 인식을 그나마 덜어 준다고 본다. 미국 등 선진국 주재에는 이선 저선 다 끌어대어 가려고 하고, 이런 분쟁지역은 힘없는 기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소위 주류 신문에 있다고, 술이나 얻어먹으며 권력이나 부리려 하는 기자는 요즘은 없는지. 사주의 개가 되어 그들의 재산 및 기득권을 지키는데 목숨 걸고, 반대 세력에는 가차 없이 그 뛰어난 문장력으로 언어폭력을 가하는 자들은 과거의 이야기겠지. 자사와 성향이 다르다고 악의적이고 위악적인 말로 대통령을 조롱하고 우중(愚衆)을 속이는 나쁜 놈들은 모두 정치권으로 들어가겠지. 지금은 참여정부에 대한 확인 사살을 간혹 하고 있지만, 주적 대상이 없어져 용비어천가로 일관하고 있는 신문. 하기야 이런 신문을 아침에 화장실에서 읽고, 사무실에서 자가의 논리인 것 마냥 지껄이는 인간들이 있는 한 계속 이런 신문은 성장할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견해가 나의 비뚤어진 언론관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비판도 달게 받을 수 있지만, 이런 논리에 동의하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말대로 ‘종군기자’가 아닌 ‘전선기자’ 정문태가 사지를 넘나들며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짧지 않은 16년이나 되는 세월을 인내하며 이런 값진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글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못 알려져 있는 사실을 바로잡고 자리매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정희 시절, 자신의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긴장감 조성용으로 ‘공산화 베트남이’ 많이 이용되었다. 이젠 젊은 사람들에게는 역사가 되어버린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 중 <킬링필드>라는 영화는 압권이었다. 지금도 잘생긴 미국 배우가 산처럼 쌓여 있는 해골을 헤치고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즉 이 영화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미군도 책임이 크다니, 그러면 이 영화는 자기들의 잘못을 가리기위한 위장 작전용이란 말인가. 저자는 이 살인마들의 만행을 전, 후기로 나누어서 평가하는데, 전기의 민간인 학살은 미군이 저질렀다고 본다.
시대와 국가를 떠나, 미국은 라오스의 불법 침공 등 온갖 나쁜 짓을 골라서 잘도 한 것 같다. 이 기록은 미군에 의해서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의 수치도 정확히 비교 제시되어 있다. 이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 지금도 많은 장애인들을 양산하고 있으니 미국이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그 당시의 책임자로, 생존해 있는 인물은 키신저가 있다는데, 그는 이 비극의 역사를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요즘 아웅산 수치 때문에 미얀마가 난리인데, 이 책에서는 이 여사를 재평가하고 있다. 민주화의 화신으로 평가되어온 아웅산 수치의 부정적인 면모가 공개된다. 책임을 학생들한테 전가하고 양지에서 그녀는 민주화 운동 자체를 권력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정문태의 기존의 역사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에 대한 이런저런 폭로는 물론 검증이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리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고 깨달은 사실을 기록했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